앙드레 말로(Malraux), 헤밍웨이(Hemingway), 조지 오웰(Orwell)
스페인 내전은 앙드레 말로의 “희망”과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그리고 조지 오웰의 “까딸루냐 찬가”라는 명작을 낳았다. 스페인 내전은 1936년 7월17일 프랑코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1939년 4월 1일에 공화파 정부가 항복하므로 종결된다. 스페인은 이후 약 36년간 프랑코의 독재 하에 놓이게 되었다. 스페인 내전은 “체임벌린”의 말로 요약할 수 있겠다. “전쟁에선 어느 편이 스스로를 승자라고 부를지라도 승리자는 없고, 모두 패배자뿐이다.”
앙드레 말로, “정의가 패할 수 있음을 스페인에서 배웠다.”
보통 스페인 내전은 제2차 세계 대전의 리허설, 20세기 최대의 종교전쟁 그리고 지식인들의 전쟁이란 말로 표현되고 있다. 내전의 발발은 스페인령 까나리아 군도에 좌천된 프랑코(Francisco Franco, 1892-1975) 장군이 스페인 정부와 국민을 향해 쿠데타를 선언함으로 시작된다. 스페인령 모로코 주둔부대들을 필두로 본토의 세비아, 바르셀로나, 안달루시아 등 전국적으로 반란군들이 총 궐기하였다. 아울러 프랑코 군부세력은 독일의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의 지원을 받은 반면, 공화파 정부는 소련의 스탈린의 지원을 받음으로 스페인 내전은 국제 대리전으로 확대되었다. 스페인 내전의 소식이 알려지자 스페인은 물론 전 세계, 특히 지식인들이 크게 분노했다. 내전이 일어나자 유럽은 물론, 북미와 남미, 전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던 젊은이들이 직접 총을 들고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피레네산맥을 넘고, 지중해를 건너와 스페인으로 모여들었다. 누가 스페인으로 오라고 강요한 사람이 없었지만 위기에 처한 스페인을 구하기 위해 총을 들고 전선으로 향한 것이다. 말 그대로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위해 단 하나뿐인 목숨을 내놓았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앙드레 말로, 헤밍웨이, 조지 오웰, 파블로 네루다, 피카소, 시몬느 베이유 등, 세계 각국의 지식인 약 4만 여명의 젊은이들이 정의를 외치며 국제여단(International Brigades)을 조직하여 전투에 참가하였다. 그 가운데서 행동하는 지성인으로 불리는 앙드레 말로(André Malraux, 1901-1976)는 1936년 9월, 국제 의용군 비행대의 조종사로 참여하여 지휘관이 된 후 무려 65차례나 출격하기도 하였다. 그는 공방전이 치열할 때에 직접 전투에 참가한 경험을 바탕으로 “희망(1937)”이란 소설을 발표하였다. 그는 소설 “희망”에서 전쟁의 참화와 극한 죽음가운데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곧 희망이라고 웅변하였다. 그럼에도 내전은 1939년 4월 1일 수많은 희생자와 망명자들이 속출한 가운데 공화파 정부의 완패로 끝났다. 스페인 내전은 말 그대로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이었다. 앙드레 말로는 스페인 내전의 아픔과 비극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인류는 정의가 패할 수 있음을, 폭력이 정신을 꺾을 수 있음을, 그리고 용기가 보답을 받지 못할 수도 있음을 스페인에서 배웠다.”
헤밍웨이,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종소리다.”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1961)는 많은 걸작을 남겼고, 그의 작품들 또한 영화로 제작되었다. 그의 작품성은 훗날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1954) 수상으로 인정받았다. 헤밍웨이의 삶과 작품을 말할 때에 두 차례의 전쟁을 체험하여 쓴 “무기여 잘 있거라(1929)”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0)” 소설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두 소설은 모두 전쟁의 상황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정반대되는 세계관을 보여 주고 있다.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일어난 제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쓴 “무기여 잘 있거라.”는 허무주의의 바탕에서 군인인 주인공이 전쟁의 참혹함에 환멸을 느끼고 탈영을 한다. 반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1937년 5월에 스페인의 내전, 세고비아 전투를 무대로 한 작품으로, 자발적으로 전선에 참전한 주인공이 자유와 평등, 그리고 사랑을 위해 싸우다 전사한다. 두 작품은 헤밍웨이의 전, 후반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자주 비교된다.
특히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라는 소설의 제목은 헤밍웨이가 영국의 시인 존 던(John Donne, 1572-1631)의 시에서 영감을 받았다. “세상 어느 누구도 그 자체로 온전한 섬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누구나 대륙의 한 조각이며 일부이다. 흙덩어리 하나가 바닷물에 씻겨나가면 유럽 대륙은 그만큼 작아질 것이며… 그 어떤 사람의 죽음도 나를 손상시킬지니 나는 인류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나 이를 알려고 사람을 보내어 묻지 말라. 바로 그대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 것이니…”
그런데 존 던의 시는 지금 유럽연합을 탈퇴한, “브렉시트(Brexit)”를 걱정하는 유럽인과 영국인에게 큰 영감을 주고 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 영국의 최고 미술상을 수상한 바 있는 독일의 볼프강 틸만스(Wolfgang Tillmans)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존 던의 말을 인용하여 “인간은 섬이 아니다.” 라고 브렉시트 반대를 역설하였다. 그럼에도 영국은 결국 브렉시트에 찬성하였고, 영국 스스로가 섬으로 복귀하고 말았다. 영국은 지금 4백 년 전 시인이 남긴 지혜, “인간은 섬이 아니다.”라는 말을 아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조지 오웰, “총알에 맞는 것이 더 행운이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이 쓴 “까딸루냐 찬가(1938)”는 그가 1936년 말에서 1937년 중반까지 민병대원으로 직접 내전에 참전해 프랑코의 파시즘 군대와 맞서 싸우면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조지 오웰은 스페인 내전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듣자 곧 아내와 함께 스페인으로 향했다. 그는 의용군 소위가 되어 4개월 이상 전투에서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도 그럴 것이 지원한 의용군 대부분이 기초훈련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그야말로 오합지졸인 지원병들뿐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전투에서 머리 부상을 입고 후방으로 후송되었다. 훗날 오웰은 “총알에 맞는 것이 총알에 맞지 않는 것보다 행운이었던 상황”이라고 회고하였다. 오웰은 극적으로 살아났지만 사상적으로 의심을 받아 더 이상 스페인에 머물 수 없어 야간열차를 타고 간신히 스페인을 빠져나왔다.
오웰은 스페인 국경을 빠져나오자 자신의 의용군 체험담과 아울러 스페인 공산당에 대한 고발을 담은 문제작 “까딸루냐 찬가”를 발표하였다. 그의 작품은 전쟁의 어리석음과 스페인 내전의 비극과 인류애에 대한 애정을 담은 작품이다. 그가 출판을 위해 처음 원고를 런던 등지로 보냈지만 모두 거부당하기 일쑤였다. 우여곡절 끝에 “까딸루냐 찬가”를 출판하였지만 출판 15여 년이 지나도록 초판 1500부가 다 팔리지 않을 정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 그의 작품은 헤밍웨이와 함께 스페인 내전에서 가장 신뢰할 만한 기록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헤밍웨이가 전쟁을 낙망적인 소설로 만들어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로 베스트셀러를 만들었다면, 조지 오엘이 전쟁의 비극과 부조리를 고발한 “까딸루냐 찬가”는 시간이 베스트셀러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 “당신이 스페인 내전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라는 질문에 대해서 오웰은 이렇게 답했다. “나는 그저 식량만 축냈을 뿐이다.”
대부분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며, 전쟁의 역사는 더욱 그러하다. 일반적으로 전쟁은 패자의 슬픔을 나누기보다 승자의 편에서 승리를 나누는 편이다. 그러나 스페인 내전의 역사는 정반대이다. 스페인 내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승자의 입장이 아닌 패자의 관점에서 기록하였고 그 가치를 평가하고 있다. 지금껏 발행된 스페인 내전에 관한 단행본만 1만5000여권이 넘은 것만 보아도 이 사실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하다. 이와 동시에 스페인 내전의 패배는 수많은 예술작품으로 재탄생 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세계 대부분의 언론들도 여전히 “스페인 내전은 패하였지만 인간성은 승리했다.”라고 패자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Franklin, 1706-1790)은 이렇게 충고했다. “좋은 전쟁 또는 나쁜 평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