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4일(주일)성경 : 창세기 27:45-28:9 제목 : 우리의 삶은 이별과 만남의 연속이다.

성경 : 창세기 27:45-28:9

제목 : 우리의 삶은 이별과 만남의 연속이다.   9. 4

언젠가 남북 이산가족이 만나는 것을 T.V 로 본적이 있습니다. 5살 때 헤어진 아버지와 아들이 65년 만에 만나고, 부부, 형제가 서로 만나 서로 부둥켜안고 기뻐하는 것을 보면서 “만남의 기쁨이 저런 것이구나!” 생각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헤어 질 때는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늘에서 만나자”라며 헤어지는 것을 보면서 “이별은 아픈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며, 헤어지기도 합니다. 지금껏 부모 형제와 만나며 헤어지고, 친구와 이웃을 만나 헤어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마드리드 사랑의교회를 통해 만났습니다. 하지만 대체로 만남은 기쁘지만, 이별은 아프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해 “우리 삶은 이별과 만남의 연속이다.”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이삭의 가정에 일어난 아픈 이별

이삭은 40살에 리브가를 만나 결혼하여, 20년 만에 두 쌍둥이를 얻었습니다. (창25:21)“여호와께 간구하매 그 아내 리브가가 잉태하였더니” 자녀를 얻기 꾸준히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자 한꺼번에 에서와 야곱, 쌍둥이를 얻었습니다. 아마 기도가 넘쳤는가? 봅니다. 결혼 20년 만에, 60살에 쌍둥이를 얻었으니 참으로 큰 경사였습니다.

 

그런데 쌍둥이였지만 서로 성격이 달랐습니다. 에서는 활동적이어서 사냥하길 좋아했고, 야곱은 조용하여 집에 머물 길 좋아했습니다. 자녀가 서로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보고 크게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에서를 좋아하고,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더 좋아하였습니다. (창25:28)“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흔히 부모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열 손가락 꽤 물어 아프지 않는 손가락이 없다.”며 편애를 부인하지만, 부모도 사람이기에 편애를 하게 됩니다. 놀라운 것은 야곱도 나중 편애를 했습니다. (창37:3-4)“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보다 그를 깊이 사랑하여 위하여 채색 옷을 지었더니” 열 형제들이 요셉을 미워하며, 팔기까지 하였습니다. 사소한 부모의 편애가 불러온 갈등과 참상입니다.

 

이삭은 임종 직전에 에서에게 축복하길 원했습니다. 그런데 리브가가 이삭의 말을 엿듣고 야곱이 먼저 축복을 받도록 계략을 꾸몄습니다. 에서는 야곱이 자기가 받을 축복을 가로챘다는 것을 알고 죽이려 했습니다. (창27:41)“그 아비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을 인하여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는 수 없이 리브가는 야곱을 친정으로 잠깐 피신시키기로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야곱은 부모와 형제와 아픈 이별이 시작된 것입니다.

 

반면, 에서는 이삭과 리브가 곁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에서 마저도 부모를 떠나 있었습니다. 몸은 부모와 함께 있으나 마음은 이미 이별한 상태였습니다. 부모에게 반항하듯, 부모가 반대하는 이스마엘의 딸을 아내로 취하였습니다. 그것도 여러 여자를 취하였습니다. (28:8)“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 아비 이삭을 기쁘게 못하는지라.”

 

에서가 행한 일은 부모의 마음에 불을 지르는 도전입니다. 부모가 싫어하는 일을 의도적으로 행함으로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최악의 불효입니다. 그런 점에서 누가복음 15장 탕자의 비유에서 집을 나간 둘째 아들보다, 집 안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아버지의 태도를 거스르고 돌아온 동생마저 거부한 첫째 아들이 더 나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야곱은 환경적으로 이삭과 리브가와 이별하였고, 에서는 마음으로 이별한 상태였습니다. 환경적인 이별도 아프지만, 마음이 떠난 이별은 더욱 아픔이 큽니다. 멀리 이별한 사람은 보고 싶기라도 하지만, 마음의 이별은 원망과 불신만이 쌓이게 될 뿐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삭의 가정에 찾아 온 아픈 이별은 편협한 사랑과 불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편협한 사랑과 불신은 아픈 이별을 가져왔고, 부모와 형제가 서로 원수처럼 살아야 했습니다. 환경적인 이별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마음의 이별만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쁜 이별이 없지만, 그렇다고 아픈 이별은 만들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1. 하나님의 계획을 통한 만남

야곱은 어머니로부터 두 가지 부탁의 말을 듣고 집을 떠났습니다. (42-45절)“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 일어나 하란으로 가서 내 오라버니 라반에게로 피신하여 네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그와 함께 거주하라” 리브가는 며칠 지나면 에서의 분노가 풀려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 확신 했지만, 리브가의 계획은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야곱의 이별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부모와 이별한 야곱은 외삼촌을 만나고, 아내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외삼촌과의 만남은 그렇게 기쁜 만남은 아니었습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을 만나 20년간 양을 치면서 무려 10차례나 속임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야곱에게 기쁨의 만남도 있었습니다. 바로 라헬과의 만남입니다. 야곱이 “라헬”을 처음 보는 순간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창29:20)“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년을 수일 같이 여겼더라.” 야곱에게 아픈 이별도 있었고, 라반을 만나 속임을 당하기도 했지만, 라헬을 만나 행복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여러 통로를 통해 만나게 하십니다. 베드로는 그의 형제 안드레를 통해 주님을 만났고, 나다나엘은 빌립을 통해 주님을 만났고, 구약에 룻은 이삭을 줍다 보아스를 만나 결혼을 하였고,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물길더러 갔다가 주님을 만났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사랑의 교회를 통하여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은 여행 왔다가 만나고, 공부하러 왔다가, 사업과 직장으로, 결혼 등으로 만났습니다. 1년 2년 정도 있다가,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한 것이 10년이 넘고, 20년이 넘기도 했습니다. 리브가가 생각한 “며칠이 20년이 된 것같이 말”입니다. 그 가운데 우리가 주님과의 만남보다 소중한 만남이 없습니다.

 

여러분 사람의 이별과 만남사람이 결정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잠16:9)“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아멘”

 

인간관계는 만남의 연속입니다. 배우자를 만나고, 이웃을 만난 것은 무엇보다 감사한 일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좋은 사람, 좋은 친구를 만난다는 것 참으로 큰 축복입니다. 사람이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기 때문에 만남만큼 중요한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라반에게 속임을 당하듯, 만나서 속임을 당하기도 하고, 이름도 모르던 사람과 만나 부부가 되고, 친구가 되기도 합니다.

 

요즘 “젊은 여자에게 명품 가방이라면, 아줌마에게는 명품 접시다.”란 말이 있습니다. 현재 세계 도자기 시장을 호령하고 있는 “웨지우드, 로얄 코펜하겐, 그리고 마이센 도자기들은 진흙과 뼈 조각으로 만든 것들입니다. 그런데 세계 아줌마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도자기들이 불가마 속에 들어갔다 나왔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욥보다 사람에게 많은 시련을 당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가 사람에게 시련을 당하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욥23:10)“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사람과의 부딪힘을 통해 단련되고 성숙하게 됩니다. 대인관계의 부딪힘과 마찰을 잘 견디며, 욥과 같이 정금같이 나오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1. 세상에서 아쉬운 이별과 천국에서 소망의 만남

창세기 49장은 야곱이 세상에서 마지막 이별을 앞두고, 12아들들을 불러 모아놓고 유언을 하는 장면입니다. 야곱은 12아들에게 차례대로 유언을 한 후에 세상에서 마지막 이별을 하였습니다. (창49:33)“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거두고 기운이 진하여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더라.” “열조에게 돌아갔다.”는 표현은 구약에서 죽음을 표한한 말입니다.

 

야곱은 자신의 생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창47:9)“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 년이니이다…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야곱의 130년 삶은 참으로 파란만장한 생애였습니다. 그의 고백이 바로 우리의 고백이며, 그의 삶이 바로 우리의 삶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야곱의 삶은 크게 두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집념의 단계입니다. 야곱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성취하고자 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형을 속이면서까지 목적을 성취하고자 했습니다. 아버지를 속여 염소 새끼를 산에서 잡아온 고기라고 속였고, 염소 털로 변장하여 에서라고 속였습니다. 요즘말로 표현한다면, 닭 잡아먹고 오리발을 내미는 격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에게 속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외삼촌 라반은 야곱에게 7년 품삯으로, 라헬을 아내로 주기로 약속해 놓고 결혼식을 올렸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라헬이 아니고 레아였습니다. 그리고 (창31:41)라반이 “20년 동안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었다.”는 말은 떼어먹은 뜻입니다. “기는 사람 위에 나는 사람이 있다.”는 말같이 라반은 야곱보다 속임수는 한 수 위였습니다.

순복의 단계입니다. (창32:14)“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야곱은 욕심과 거짓으로 살았던 삶을 청산하고, 얍복강 가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어,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요셉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이제 죽어도 가하도다.”라고 하였고, 자녀들이 서로 화해한 것을 보며 “내가 이제 죽어도 가하도다.”라고 하였고, 요셉이 공경하는 것을 보고 “내가 이제 죽어도 가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인생은 이별과 만남의 연속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머니 배속에서 출생한 이후 부모와 가족과, 친구를 만납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슬프고 아픈 이별을 반복합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마지막 이별을 죽음이라고 말합니다. 죽음은 세상에서 마지막 이별이기에 더 없이 슬프고, 아프고 아쉬운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런 이별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에게는 세상에서 이별이 마지막이 아닙니다.

 

천국에서의 만남이 있습니다. 천국에서 만남은 영광의 만남이고, 다시 헤이지지 않는 영원한 만남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천국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계14:13)“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요14:2-3)“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우리는 세상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이별을 합니다. 그러나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소망과 확신을 갖고 사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