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7일(주일)설교 : 40년 광야 생활을 기억하라.

성경 : 신명기 8 : 1 – 6 / 제목 : 40년 광야 생활을 기억하라. 2016. 8. 7

성경에 “40”이라는 숫자가 많이 나옵니다. 노아가 방주에서 40일 만에 나왔고, 모세가 시내산에서 40일 동안 율법을 받았고, 이스라엘 정탐꾼들이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했고,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했으며,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광야생활을 하였습니다. “40”은 대체적으로 “고난과 시련”을 의미 하는 숫자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모세오경의 5 번째인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 모압 평지에서 약 2개월 머물면서 모세가 마지막으로 한 설교입니다. 본문 모세의 설교를 듣고 있는 대부분은 광야에서 출생한 광야 2세대들입니다. 신명기에만 “기억”이란 말씀이 18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명기를 “기억의 책”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모세는 유언과 같은 설교를 통해 광야 2세대들에게 왜 “40년의 광야 생활을 기억하라”고 했는지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40년 광야에서 낮추시며 주리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3)

광야는 낮에는 뜨거운 햇볕이 쏟아지고, 밤에는 추위가 뼈 속까지 스며들며, 불 뱀과 전갈이 득실거리는 곳입니다. 또한 광야는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는 곳으로, 사람이 정착하여 살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일을 해도 열매를 기대할 수 없는 곳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구약 신학자 “월터 브루거만” 교수는 “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곳”(Nothinglessness)라 표현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3-4절)“40년 동안 만나를 먹이셨고,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않았고,”,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 하셨습니다.” (수5:12)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첫 수확을 얻을 때까지 광야에서 40년 동안 만나를 먹었으며, 전혀 굶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별로 하는 일도 없이 40년 동안 광야에 머물게 하셨습니까? 광야 40년은 결코 의미 없는 시간을 보냈거나, 낭비하는 기간이 아니었습니다. 2절에서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2절)“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3절)“너를 낮추시며 주리게 하시며”

 

낮추다.”라는 말은 겸손이란 뜻이며, “시험테스트, 훈련이란 뜻입니다. 즉, 광야 40년 동안 힘들고, 배고픈 생활을 통해 겸손을 훈련하신 것입니다. 다른 말로하면 “겸손이란 40년 동안 훈련해야 얻을 수 있는 것, 그것도 광야에서 40년을 훈련해야 얻을 수 있는 가치 있는 것이란 뜻입니다. 저도, 겸손이 이토록 가치 있는 줄 몰랐습니다.

 

이 사실은 모세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민12:3)“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모세는 광야 40년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겸손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올림픽 선수도 10년 정도 훈련하면 되고, 강인한 군인이 되는 것도 10년 정도면 충분한데, 겸손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40년이 필요한가? 또한 겸손이 40년을 훈련해서 얻을 만한 가치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잠언16:18-19)“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겸손한 자와 함께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 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 겸손의 반대 말이 교만인데, “교만하면 무조건 넘어진다.” “교만하면 무조건 망한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망하지 않도록 40년 광야에서 배고픔을 통해 겸손하게 하신 것입니다. (약4:6)“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헬라어로 “교만”의 뜻은 “다른 사람 위에 자신을 올려놓는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도 여전히 자기 백성들을 광야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언제? 자기 백성들이 교만할 때 광야의 길로 인도 하셨습니다. 모세와 다윗도, 엘리야도 광야에서 겸손을 배웠습니다.

처음 예수 믿고 은혜 받았을 때는 겸손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도 모르게 교만하기 쉽습니다. 세상에 가장 어려운 것이 자기성찰입니다. 우리가 타인의 신앙은 잘 평가하면서 정작 자신의 모습을 모를 때가 많습니다. 우리 모두 교만하지 않도록 항상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1. 40년 광야에서 주신 계명을 기억하라.( 3)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두 차례에 걸쳐서 주신 두 가지가 있습니다. 율법과 성막입니다. 십계명은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출애굽기 20장의 십계명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지 3개월 되었을 때 시내산에서 주신 것이요, 신명기 5장의 십계명은 40년이 지난 후 광야에서 태어난 신세대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십계명의 형식은 “하라”“하지 말라”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 말라”가 8번이 “하라”가 2번입니다. 소극적인 계명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십계명은 소극적인 계명이 아닙니다. 그러면 왜 “하지 말라”는 교훈이 많은가?

 

부모가 공부 잘 하고 있는 자녀에게 공부 잘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대신 “게으르지 말라.”고 말합니다. “살인하지 말라”고 한 것은 비교적 잘 지키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대신 살인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감음하지 말라”는 계명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처럼 직접적으로 간음을 잘 행하지 않지만, “간음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반면 하라는 계명이 둘 있습니다. 4계명과 5계명입니다. 왜 “하라”고 명령합니까? 많은 사람들이 다른 계명들에 비해 두 계명을 잘 지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계명에 비해서 주일을 지키는 일과 부모 공경을 잘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신17:18-19)“이 율법서를 등사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서 그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서를 등사하여” 성경을 장식용이나 보관용이 아닌 매일 묵상하며 깨달음을 얻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시119:105)“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성경에서 죄인, 악인은 “기준이 없는 사람”을 뜻합니다. 오늘날 기강이 무너지고 제멋대로 사는 것은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광야에서 성막을 주셨습니다. 성막에 관한 제도는 출애굽기에 25장-40장까지, 출애굽기 1/3에 해당하는 분량입니다. 아마 이 부분이 성경에서 가장 읽기 싫고, 흥미 없는 내용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성막제도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은 그 안에 속죄의 진리가 구체적으로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시는 데는 단 6일 소요하셨지만, 성막의 설계를 모세에게 지시하는 데만 무려 40이 걸렸습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성막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게 해 줍니다. 성소 안에는 7개 성기구들을 두었고, 지성소에는 언약궤를 두었습니다. 언약궤 안에는 하나님과 맺었던 십계명을 두었습니다. 언약궤가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겨져 있는 십계명 때문입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광야에서 머물러 있을 때는 언약궤는 중앙에 위치해 있었고, 앞으로 나아갈 때는 가장 앞에 위치했습니다. 성막이 백성들이 머물러 있을 때 성전이라면, 언약궤는 이동 성전, 즉 길 위에 있는 성전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광야 길을 걷고 있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를 허락하셨습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말씀과 교회가 우리 삶의 중심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광야의 길을 걸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1. 40년 광야에서 축복과 저주를 기억하라. ( 5)

히브리어로 광야미드바르라고 합니다. 반면, “말씀은 히브리어로 다바르라고 합니다. 즉, “광야”의 동사형이 “말씀”이란 단어입니다. “광야”와 “말씀”은 같은 단어로, “광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순종하는 곳”이란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머물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도록 하도록 함이었습니다.

 

그런데, 40년 광야에서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 출애굽 1세대가 불순종함으로 모두 죽었습니다. 모세는 민수기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 동안 불순종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민수기는 “불순종의 책”, “죽음의 책”, “피 묻은 책”이라고도 합니다.

 

모세는 신명기 28장에서 백성들이 불순종하여 저주를 받지 말고, 순종하여 축복을 받도록 하였습니다. 신명기 28장은 “축복과 저주 장”이라 부릅니다. 2절부터 14절에는 순종을 통해 축복을 약속한 말씀입니다. (신28:2)“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성읍에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몸의 소생과 토지, 떡 광주리에,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을 것”

 

반면, 불순종에 대한 저주의 말씀은 15절부터 68절까지 64절입니다. 우리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읽고 싶지 않는 부분일 것입니다. 무서운 저주로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저주의 말씀이 축복의 말씀보다 4배가 많습니다. 이것은 축복보다 저주 받기가 쉽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언제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까? 순종하였을 때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있고 기도를 많이 하고 직분을 맡고 있어도 순종이 빠지면 그것을 믿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순종이나 복종은 인기 없는 말입니다. 성도들조차 순종에 대하여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순종은 아이와 여자, 약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은 침묵하거나 자신의 의사를 나타내지 말라는 뜻도 아닙니다. 더욱이 순종이 열등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순종은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요14:15)“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킬 것이니라.”

 

축복은 선택함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동물에게 없는 “자유의지”라는 것이 있습니다. 동물은 자유의지가 아닌 본능에 의해 살아갑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유의지에 따라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순종함으로 축복을 받는 것과 불순종함으로 저주를 받는 것은 모두 우리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는 광야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광야의 길을 걷고 있는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과 주님의 몸인 교회를 주셨습니다. 우리 앞에는 축복과 저주가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므로, 축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