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월31일(주일)설교 : 세 가지 핸디캡을 극복한 사람, 입다

성경 : 사사기 11 : 1-11 / 제목 : 세 가지 핸디캡을 극복한 사람, 입다

사람은 누구나 약점이 있습니다. 삭개오는 키가 작은 약점이 있었고, 모세는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약점이 있었고, 베드로는 성질이 급한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비해, 오늘 본문의 입다는 3가지 이상의 약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제 8대 사사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입다의 핸디캡이 무엇이며, 그것을 핸디캡을 극복했는가를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출생의 핸디캡을 극복하다.

입다의 삶은 우리나라 조선시대(1443-1510)홍길동과 아주 흡사합니다. 두 사람은 모두 기구한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이들의 어머니는 모두 기생이었고, 서자 출신이었습니다. 이들은 형제들에게 따돌림을 당해 마침내 집에서 쫓겨난 것이나, 산에서 산 것까지 흡사합니다.

입다는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출생부터 차별을 받았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기생이었고, 아버지는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사생아로 태어났습니다. “사생아”란 부부 사이가 아닌,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난 사람을 뜻합니다. 율법에(신23:1) 사생아는 이스라엘 일원이 될 수 없었습니다. 입다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최악이었지만, (1절)“용사”가 되었고, “제 8대 사사”가 되었습니다.

가족의 비밀이란 책을 쓴 세르주 티스롱정신분석학자는 “가족의 비밀은 개인의 정체성을 지탱해 주는 버팀목인 반면, 자신의 삶을 옥죄는 가장 고약한 것이 된다.”라고 했습니다. 출생과 가족력은 개인의 삶과 인격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칩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출생과 가족력에 대한 핸디캡을 숨기고 싶어 합니다.

저는 김영(金寧)김씨로, 김시흥 할아버지 28대 손이며, 시흥할아버지는 신라 제 56대, 마지막 왕(895-978) 경순왕의 11대 손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신라 경순왕의 39대 손인 셈입니다. 경순왕은 고려 태조 왕건에게 항복함으로 신라 마지막 왕이 되었습니다.

저의 집에도 제1대 경순왕부터 직계 아버지 족보까지, 1050년이나 된 족보를 보관하고 있습니다. 1000년이 지난 저희 집안의 족보 안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멀리 가지 않아도, 저희 직계 할아버지는 본부인과 첩을 두고 있었습니다. 저와 같은 족보에 이름이 올라 있는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는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함으로 한국 현대사에 큰 이변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마태는 유대인들이 자랑하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족보의 비밀을 가감 없이 폭로하고 있습니다. 자랑스러운 내용도 있지만, 야곱이 며느리와 불륜의 관계, 다윗의 증조모가 기생 라합이란 것과 다윗의 불륜 등, 부끄러워 감추고 싶은 수치스러운 족보를 밝히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아브라함과 다윗,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의 족보는 수치스러운 족보입니다.

성경이 차마 낯 뜨거워 공개하기조차 부끄러운 족보를 기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태는 족보를 통해 우리가 자랑할 것이나, 그것 때문에 얽매일 수 없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과거 우리 부모나 형제가 저지른 일에 대해, 우리 가문에 이복형제가 있고, 과거 집안이 복잡했던 일들이 오늘, 우리 자신을 옥죄이거나 발목을 잡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고후5:17)“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자신의 가문이 양반이니, 귀족이니 하며 집안을 크게 자랑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집안의 비밀이 드러날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몇 대만 거슬러 올라가면 자랑할 수 없는 수치가 드러나는 것이 인간의 족보입니다.

바울은 (디도서 3:9)“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은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입다가 출생에 대한 핸디캡을 잘 극복하였습니다. 입다는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출생과 가족력이 결코 핸디캡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혹 출생과 가족력의 문제가 장애가 되지 않도록 잘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집단 따돌림의 핸디캡을 극복하다.

“집단 따돌림”은 오늘날 “왕따”라는 말로 통합니다. 전문가들은 지금 “왕따”는 사회전반 특히, 학교에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합니다. 왕따 말고 “은따”가 있는데,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는 것이며, “전따” 집단의 전원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것이며, “대따” 드러내 대놓고 따돌림을 당하는 것, “뚱따” 뚱뚱해서 따돌림을 당하는 것, “진따” 지질해서 따돌림을 당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집단 따돌림의 원인을 경쟁과 우월, 열등의식에서 비롯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 설문조사에서 요즘 아이들이 가장 많이 따돌림을 받는 경우를 밝혔는데, “너무 잘난 척하고 다른 친구를 무시하는 아이”, “선생님께 고자질 하는 아이”, “공부 잘하고 똑똑한 척하는 아이” 그리고 “가장 만만해 보이는 아이(약자)”가 따돌림의 표적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찍이 성경에도 따돌림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요셉입니다. 요셉이 “집단 따돌림”을 당했는데, 그 이유는 아버지의 사랑을 많은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주 이상적인 꿈을 꾸고 말했다고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창37:5)“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고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그뿐이 아닙니다. 얼굴이 너무 잘생겨,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반면 입다가 형제에게 따돌림을 받은 것은 요셉과 정반대입니다. 요셉이 너무 똑똑해서 따돌림을 받았다면, 입다는 너무 지질하고 못나서 왕따를 당했습니다. (전4:4)“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로 말미암아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입다는 형제들의 따돌림과 차별 때문에 고향에서 25Km떨어진 산악지대, 돕 땅으로 쫓겨났습니다.

사람들은 따돌림을 당하면, 극단적인 생각을 합니다. 학생들은 학교 가는 척 하면서, 컴퓨터방에 가고, 직장인들은 직장을 그만 두겠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직분자들은 “구역장, 교사 안하겠다고 합니다. 목사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교회를 떠납니다. 저도 과거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입다는 어떻게 했습니까? (2-3절)“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내며 이에 입다가 그 형제를 피하여 돕 땅에 거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 잡류”란 원문에 “할 일이 없는 사람들” “우리 표현으로 백수, 건달”을 말합니다.

이들이 왜 산중에 숨어 있는 입다에게 왔습니까? 본문을 근거할 때 입다는 무예가 뛰어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입다를 찾아 온 것은 출중한 무예뿐 아니라,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을 용납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점 또한 홍길동과 비슷합니다. 입다는 자신의 처지도 힘들지만, 자신의 도움을 받겠다는 찾아온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입다의 위대한 점입니다.

우리는 입다에게서 두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입다는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두 가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출중한 무예와 자기와 똑같이 아픔을 당한 사람들을 받아주었습니다. 입다는

자신을 찾아온 자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받아 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입다는 자신이 먼저 배척을 받아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배척 받은 사람들을 받아주었습니다. 입다는 누구보다 “배척과 따돌림”의 아픔을 경험하였기에 배척받고, 따돌림 받은 자들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구약, 나오미는 남편과 두 자식을 잃은 아픔을 갖고 있었습니다. 훗날, 그의 며느리 룻이 남편을 잃고 고통스러워 할 때, 나오미의 말 한마디는 룻을 고통 가운데 일으켜 세울 수 있었습니다. 나오미는 자신이 당한 아픔과 고통을 갖고 있었기에, 룻을 세워주고 붙잡아 줄 수 있었습니다. 입다 또한 자신이 먼저, 배척과 따돌림을 받은 아픔을 경험하였기에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내가 먼저 경험한 아픔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서 주신 도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따돌림을 당한 경험이 있기에 따돌림 당한 자를 치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이 과거 실패와 아픔의 경험이 있습니까? 그것은 지금 실패를 당한 자들을 치유할 수 있는 치료제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아픔마저 감사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1. 원한에 대한 핸디캡을 극복하다.

입다를 가로막고 있는 큰 장벽은 원한입니다. (2절)“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 집에서 기업을 잊지 못하리라” 오늘날로 말하면, “너는 우리 가문의 자식이 아니니 족보도 없고, 유산도 받지 못한다.” 라는 말입니다. 입다는 절벽 같은 핸디캡을 어떻게 뛰어 넘었습니까?

(4절)“얼마 후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하니라.” 전쟁으로 나라가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장로들이 입다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5-6절)“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할 때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데려 오려고 돕 땅에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암몬 자손과 싸우려 하나니 당신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

그러자 입다는 뼈 있는 말을 합니다. (7절)“전에는 당신들이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하지만 입다는 기회주의적인 길르앗 장로들을 탓하지 않고 기꺼이 순응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달면 삼키고 쓰면 내 뱉는다.” 거절하겠지만, 입다는 과거 원한을 다 묻고, 그들의 요청을 받아 들였습니다. (11절) “백성이 그로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그러기에 입다는 히브리서 11장 믿음의 전당에 그의 이름이 올라와 있습니다.

입다가 자신의 과거를 탄식만 하고 남을 원망만 하고 있었다면 뒷골목의 두목 정도밖에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입다는 자존심보다 사명이 더 중요함을 알았습니다. 적어도 입다는 과거의 원한이 오늘을 헌신하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자신을 웅덩이에 넣고, 짐승과 같이 취급하여 노예로 팔았던 형들을 만났을 때(창50:21)“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요셉은 자신이 가진 힘을 원한을 갚는데 사용치 않았습니다.

성도여러분! 지난 날 피해를 본 것 때문에, 부당하게 당한 일로, “이제 너희들도 당해봐라.”고 하는 태도는 하나님 앞에 옹졸한 생각입니다.

입다는 출생의 핸디캡, 따돌림의 핸디캡, 그리고 원한의 핸디캡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해도 극복하기 어려운 핸디캡이었지만, 잘 극복하고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우리에게도 저마다 핸디캡을 갖고 있습니다. 별로 쓰임새도 없는 자존심과 체면은 핸디캡을 극복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나에게 있는 크고 작은 핸디캡들을 극복하여 입다와 같이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