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 있는 탕자 / 탕자의 속편

성경 : 누가복음 15 : 25-32

제목 : 집안에 있는 탕자 / 탕자의 속편 2016. 3. 6

누가복음 15장 “탕자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둘째 아들이 집을 나간 후 다시 아버지 품으로 돌아 온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탕자가 집으로 돌아온 이후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즉, “탕자의 속편”에 대하여 생각하고자 합니다.

 

주님께서 이 비유를 하신 이유(15:1-2)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여기 두 부류의 사람, 세리와 죄인들, 그리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입니다. 두 종류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은 후에 탕자의 비유를 해 주셨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세리와 창기, 죄인들을 영접하고 계십니다. 탕자와 둘째 아들은, 세리들과 창기에 비유한 반면, 맏아들은 주님께서 세리와 창기들을 영접하고 그들과 교제하는 예수님을 향하여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비유하였습니다.

 

“한때 세상에서 비난받고, 부도덕하던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왔을 때,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한 없이 기뻐하신다는 것이 전반부 탕자비유의 핵심이라면, 이미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비난받던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 온 것에 대해 맏아들과 같이 못 마땅하게 여기는 것이 오늘 본문의 핵심입니다. 내안에는 바리새인과, 맏아들과 같은 태도가 없는지 살펴보며, 교훈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1. 맏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탕자의 속편은 파티로부터 시작됩니다. 탕자의 아버지는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자 큰 축제를 열었습니다. 그 잔치의 규모는 어마어마했습니다. (22-23)“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마침 큰 아들이 밭에서 일을 마치고 집 가까이 왔을 때, 풍악과 춤추며 노래 소리가 들렸습니다. 맏아들은 종들에게 “이 무슨 소리인가?” 물었습니다. 그러자 종이 “당신의 동생이 건강하게 귀향하여 당신의 아버지가 살진 송아지를 잡고 온 동네 사람들을 초청해 잔치를 베풀었나이다.” 대답하였습니다. 이 때 맏아들의 반응이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28절)“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둘째 아들이 집으로 들어오자 이제 큰 아들이 집에 들어가지 않고, 집을 나가겠다고 합니다. 맏아들이 화가 난 이유가 무엇입니까? (29-30)“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아들이 화가 난 이유가 정당하며, 모두 맞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맏아들의 과오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이 집으로 돌아 왔을 때 (24절)“죽었다가 다시 살아 온 아들”, “잃었다가 다시 얻은 아들”이라고 생각했지만, 맏아들은 (28절)“화를 냈고” (30절) “아버지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버린 아들” 돌아온 아들을 동생이라 하지 않았습니다.

 

맏아들은 아버지가 죽은 줄로만 알고 집밖에서 날마다 기다리던 아픔과 다시 돌아 왔을 때 기뻐하여 잔치를 베푼 아버지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심지어 “아버지의 아들”로 인정하지도 않고, 정죄하기에 바빴습니다.

아버지는 (31절)“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무슨 말입니까? 아버지는 사랑하는 큰아들을 위해서 모든 계획을 세워놓았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재산을 큰아들에게 줄 계획을 세워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큰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내가 보기에는 미운 동생이고, 사람 구실 못하는 문제아로 보일 수 있고, 내가 생각하기에는 못난 형으로 보일 수 있지만, 부모는 못난 자식이나, 잘난 자식 똑같은 자식입니다.

맏아들은 동생이 실수한 것 때문에 “나와 상관없다. 동생이 아니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잘 섬길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눅15:7)“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 돌아온 자들 소중히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1. 맏아들은 동생이 자신의 몫을 빼앗는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월로우 크릭교회에서 “빌 하이벨스” 목사님이 소개한 내용입니다. 미국의 한 중소도시에 아주 큰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그곳 주민들이 이주하거나 세상을 떠나 담임목사도 없이 겨우 4사람만 남게 되었습니다.

 

4사람은 매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는데, 교회당 문을 걸어 잠그고 드립니다. 4사람밖에 남지 않은 그 교회의 가장 큰 고민은 교회가 부흥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누가 예수 믿겠다고 교회에 나온다는 것이 가장 두려웠습니다. 이유는 교회당 안에 묘지가 4구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교회당에 오는 사람을 자신의 묘지를 빼앗으러 오는 침략자로 보았습니다.

 

지금 맏아들이 동생이 집으로 왔다는 소식을 듣고 화를 내고, 아버지를 향해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한 것은 동생이 돌아옴으로 자신의 몫이 빼앗기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즉, 맏아들은 동생이 자신의 몫을 빼앗아 가려는 침략자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맏아들은 그간 혼자 아버지를 독차지 하고, 아버지의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인 줄 알고, 열심히 효도하고 일했는데, 어느 날 죽은 줄로 생각한 동생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경계를 하게 된 것입니다.

 

(29-30절)“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겼다.”라는 말은 “내가 종살이를 했다.”는 뜻입니다. 맏아들은 아버지와 관계는 부자 관계라는 의식보다 “주인과 종의 관계”, “대가를 바라고 일하는 일군”의 관계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맏아들은 자원된 마음으로 일한 것이 아니라 대가를 바라고 일하였습니다. 맏아들은 아버지를 향한 사랑 때문이 아니라, 의무감에 얽매여 일했습니다.

 

아버지는 분명 맏아들에게 “아버지의 것이 모두 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상속자란 뜻입니다. 그런데 “염소 새끼라도 주지 않는다.”“열심히 일했는데, 알아주지 않았다.”고 분노를 터뜨립니다. 자기가 상속자라는 엄청난 사실에 대하여 감사하기보다, 보잘 것 없는 염소새끼를 주지 않았다고 불평을 합니다.

 

맏아들이 이토록 동생을 경계합니까? 동생이 자신의 몫을 빼앗는 약탈자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즉, 이기심이 동생이 동생으로 보이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이기심은 부모를 부모로 보이지 않게 하며, 심지어 하나님도 바로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열심히 잘 믿는 사람에게 영적 이기심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나보다 열심히 봉사하는 것을 보면 미워 보이고, 내가 못하는 것을 잘하는 사람을 보면, 괜히 심술이 납니다. 열심을 내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내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 것에 대해, 시비를 걸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아벨이 누구의 손에 죽임을 당했습니까?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은 경쟁자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누구로부터 따돌림을 받았습니까? 가장 가까운 형제들로부터입니다. 형제들은 요셉이 아버지의 사랑을 가로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과 예수님이 누구에게 죽임을 당했습니까? 같은 동족으로부터입니다. 백성들의 마음을 빼앗아 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 목사님들을 대상으로 교회에서 제일 불편한 사람이 누구인가? 라고 물었습니다. 1위가 40일 금식기도 한 성도, 2위는 철야기도 많이 한 권사님, 3위는 신학 공부한 장로님이라고 답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은혜를 가지고 남을 정죄 하는데 사용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형제는 경쟁자가 아니며, 부모의 사랑을 뺏는 약탈자가 아닙니다. 부모의 사랑을 동생이 독차지 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경쟁자가 아니며 약탈자가 아닙니다. (고전3:6)“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1. 아버지와 탕자, 그리고 맏아들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비유하신 아버지는 바로 다름 아닌 “우리 하나님 아버지시며”, 돌아온 탕자는 세리와 죄인들이며, 그리고 맏아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는 맏아들과 탕자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아버지는 대항하는 맏아들에게 둘째 아들에게 그러하였듯이 책망이나 야단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버지는 큰 아들이 집에 들어오지 않자 “얘야,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지 않느냐? 또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네 것이 아니냐?”고 설득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 아버지는 탕자와 같은 우리를 향해서 “잘 돌아왔다.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고 하시면서 참으로 기뻐하십니다. 또한 하나님 아버지는 맏아들과 같은 우리를 향해서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네 것이 아니냐?”라고 동생을 잘 보살필 것을 부탁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과연 큰 아들이 아버지의 설득을 받아들여 잔치에 참여했으며, 맏아들도 동생을 안고 환영했으며, 맏아들도 동생처럼 자신의 허물을 고백했을까? 예수님은 여기에 대한 해답을 주지 않습니다. 이 부분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 해답을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내리도록 한 것입니다. 즉, 오늘 말씀을 듣는 우리 스스로가 결정하고, 결단해야 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병원이 좋은 병원입니까? 건강하고 조금 아픈 사람들이 찾아오는 병원이 아니라 각종 병자 심지어 불치의 병자들까지 병을 고치기 위해 찾아오는 병원이 좋은 병원입니다. 사람들은 병원에 암환자나 불치의 병자가 있다고 해서 병원 이미지가 나빠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그 반대로 생각합니다.

 

교회는 병원과 같은 곳입니다. 주님은 오늘 비유를 통해서 죄인과 세리뿐만 아니라, 그들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까지도 고침을 받을 수 있음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탕자뿐 아니라, 탕자를 비난하는 맏아들까지도 용납하시는 신실하신 분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있는 탕자의 모습, 맏아들의 모습을 버리고 하나님 아버지를 진정으로 섬기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