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로마서 12 : 1 – 3
제목 : 예배를 통해서 삶을 회복하는 교회
- 1. 3(신년예배)
2016년 새해에도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의 가정에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총이 넘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6년도 사랑의 교회 3대 중점사항을 전했습니다. 첫째, 예배를 통해 삶을 회복하는 교회, 둘째,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 그리고 셋째, 성도의 교제와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교회로 선정했습니다.
오늘부터 이 세 가지를 한 가지씩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세 가지 중 첫 번째, “예배를 통해 삶을 회복하는 교회”란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예배는 우리의 몸을 거룩하게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잘못 이해하는 말 가운데 하나는 “거룩”이란 단어일 것입니다. “거룩”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만 들어도 나와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아니면 “도덕적으로 깨끗한 사람” 정도로 생각합니다. 전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부분적입니다.
“거룩”이란 “자르다, 분리하다.”란 뜻으로 “하나님께서 구별 하신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하나님의 백성의 표식으로 할례를 행하게 하였습니다. 할례란 남자의 생식기를 잘라 내는 것을 말합니다. (창17:11)“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거룩”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거룩”이란 “하나님에게 구별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린 것을“거룩하다”라고 하셨습니다. (레27:28)“어떤 사람이 자기 소유 중에서 오직 여호와께 온전히 바친 모든 것은 사람이든지 가축이든지…바친 것은 다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함이며” 거룩이란 “하나님께 바쳐진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헌신, 헌물, 헌금이 소중한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 몸을 “거룩한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고전3:16)“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거룩하게 살기 때문에 우리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1절)“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는 뜻은 “너희 몸을 하나님께 구별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몸을 하나님께 구별하는 것이 거룩이며, 우리 몸을 구별하여 드리는 것이 곧 “영적인 예배”입니다.
안식일과 평일은 똑같은 날이지만, 하나님께 예배할 목적으로 구별하였기에 거룩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창2: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출20:8)“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성경이 아나니아 삽비라의 사건을 크게 다루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나니아 삽비라가 사도들을 속이고 거짓말을 하고, 얼마의 돈을 숨긴 것 때문만이 아니라, 하나님께 구별한 것을 숨겼기 때문입니다. (행5:4)“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바울은 우리가 예배할 때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신다.”라고 하셨고, 우리 몸을 구별할 때, “거룩한 삶”이라고 하셨고, 우리 몸을 구별하여 예배할 때 “영적 예배”라고 하였습니다. 2016년은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합니다.
- 예배는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한다.
바울은 먼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2절)“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말합니다. 지금 세상은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합니까? 세상은 먹고 마시고,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정직하면 손해 본다.” “겸손하면 무시당한다.” 잘못된 길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런 요구에 대하여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항거하지 못하고 떠밀려가고 있습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뜻은 “처분하라”는 뜻입니다. 지난 달, 튀니지 노 선교사님이 경영하는 양계장을 돌아보고 왔습니다. 선교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닭은 알을 낳기 시작한지 1년 6개월이 지나면 알을 낳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약 2년이 되면 묵은 닭이 되는데, 처분을 한다고 합니다.
묵은 닭을 빨리 처분해야 하는 이유는 묵은 닭은 자신이 알을 낳지 못하면서 새로운 닭을 쪼아 상처를 주기도 하며, 새로운 닭이 낳은 알을 깨어 버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인은 묵은 닭을 빨리 처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은 때로 유익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올무가 되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에 “스프링 폭스”라는 산양에 대하여 글을 읽었습니다. “스프링 폭스”는 수 천 마리씩 떼를 지어 다니는데, 뒤에 있는 양들은 언제나 먹을 풀이 거의 없게 됩니다. 그래서 뒤에 있는 양들은 앞으로 나가야만 풀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앞에 있는 양들을 밀면서 앞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앞에 있는 양들은 뒤에 있는 양들이 계속 미니까 영문도 모르고, 걸음이 자꾸 빨라지다가 나중에는 모두 덩달아 뛰게 됩니다. 앞에 웅덩이가 있어도, 낭떠러지기가 있어도 걸음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앞에 있는 양들은 뒤의 양에게 떠밀려 웅덩이나 낭떠러지에 빠지게 되며, 큰 강물이나 호수를 만날 때에 결국 모든 양들은 몰살하고 만나는 것입니다.
저는 이 글을 읽고, 우리 사람은 양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정말 양 같아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왜 뛰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세상 사람들이 뛰니까 따라서 뜁니다.
세상 사람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왠지 낙오되면 안 된다는 불안 때문에 죽어라고 따라 뜁니다. 세상을 본받으려고, 세대를 본받으려고, 다시 말해 세상과 세대에서 분리되지 않으려고 열심히 뜁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마음을 새롭게 변화를 받아야 한다.” 란 말씀은 “회복하다, 갱신하다.”란 뜻으로, “유효 기간이 만류되어 다시 계약한다.”란 뜻입니다. 즉, 유효기간이 만료된 마음을 “예배를 통해서 다시 회복하며, 다시 갱신한다.”란 뜻입니다.
만약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부패하며 상하게 됩니다.(엡4:24-25)“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여기 “거짓”이란 “상하고 부패한 말”이란 뜻합니다. 마치 광주리에 섞은 과일이 하나가 광주리에 담겨 있는 모든 과일을 상하게 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예배는 세상으로부터 우리의 마음을 지켜 줄 뿐 아니라, 예배는 우리의 삶을 날마다 새롭게 갱신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의 마음이 날마다 새롭게 되길 바랍니다.
- 예배는 우리의 생각을 지키게 한다.
(3절)“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사람의 생각은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습니다. 생각은 마치 제방과 같아서 평소는 단단한 것같이 보이지만, 쉽게 무너집니다. 또한 우리 생각은 물과 같이 자연스럽게 흐르다가 어떤 상황을 만나면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파괴적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생각이 무너지는 것 중에 하나는 “다툼과 분노”입니다. 다툼과 분노는 사람의 생각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파괴적으로 나타납니다. 가인이 아우, 아벨을 죽인 것은 분노로 말미암아 마음과 생각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염려가 커져, 생각이 무너지려 할 때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빌4:6-7)“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워처만니” 선교사님이 중국에서 사역을 하고 있을 때 두 농부가 살았습니다. 부지런한 농부는 매일 물통을 지고 비탈길을 오르며, 열심히 물을 져 날랐습니다. 반면, 게으른 농부는 밤만 되면 부지런한 농부의 논으로 가서 구멍을 내어 자기 논으로 물을 빼갔습니다.
부지런한 농부는 이 사실을 알고,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지만, 그리스도인이었기에 참고 워처만니 선교사님을 찾아가서 어떻게 하면 좋은지 물었습니다. 그때 선교사님은 물을 빼간 사람과 다투지 말고, 감사함으로 계속 물을 져 나르라고 했습니다. 농부는 화가 났지만 선교사님이 타이르는 말씀 때문에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그 다음날도 게으른 농부가 3일간 계속해서 물을 빼내어 갔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부지런한 농부는 선교사님에게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라는 말을 하기 위해 선교사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선교사님과 함께 예배를 드린 후 “내일부터는 게으른 농부의 논에 물을 먼저 주고, 다음에 당신의 논에 물을 주라”고 했습니다. 농부는 생각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았지만, 또 한 번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3일이 지났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게으른 농부가 부지런한 농부의 집에 찾아와서 무릎을 꿇고 “내가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부지런한 농부는 난생 처음 “예배와 기도”가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었을 뿐 아니라 “기쁨과 평안”을 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생각이 소용돌이칠 때 “기도와 예배”보다 생각을 지켜주는 것이 없습니다.
예배는 우리의 몸을 거룩하게 합니다. 예배는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그리고 예배는 우리의 생각을 지키게 합니다. 2016년 새해, 예배의 회복을 통해서 자신은 물론, 온 교회가 회복되는 역사를 경험하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