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남편, 그리고 아버지

 

성경 : 고전 16:13-14

제목 : 아들과 남편, 그리고 아버지

  1. 4.11.(남선교회 헌신예배)

 

사람을 구분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남자와 여자입니다. 남자를 구분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아들과 남편과 아버지입니다. “아들과 남편과 아버지”는 모든 남자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남자에 해당하는 아들과 남편과 아버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아들에 대하여, 좋은 믿음의 아버지가 되라.

한국에서 아들이 태어나면 주민등록 생년월일 뒤에 첫 번호는 “1”과 “3”이 됩니다. 반면, 딸은 “2”,“4”가 됩니다. 뒤쪽 맨 앞 숫자가 1이면 1900-1999년에 태어난 남성이고, 2이면 1900-1999년에 태어난 여성입니다. 2000년 이후에 태어난 남성은 3, 여성은 4입니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아들은 딸보다 더 좋은 대접을 받고 자란 것”이 사실입니다.

 

여자가 조금 나서면 “여자 주제에” 했고, “여자가 아침부터 잔소리한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등 차별을 받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한국은 아들을 선호하였습니다. 남아선호 사상은 낙태를 가져왔고, 성비가 균형이 깨져, 남자의 숫자가 많아 신부 감이 모자라게 되었습니다.

 

대체적으로 한국에서 1990년도부터 “마마보이”란 말이 생겼습니다. 어떤 설문조사에서 “엄마가 아들의 학교와 직장 선택에 얼마나 많이 관여 했나?”질문에 1/3 정도가 관여 했다고 답했습니다. 부모가 아들의 진학, 직장뿐 아니라 심지어 배우자의 선택까지 부모가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회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책임감과 독립심이 없어졌습니다. 자기중심적이 되었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고, 학교에서 선생님, 나아가 부모의 말까지 듣지 않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내 아들은 부모 말 잘 듣겠지? 착각입니다. 미운 7살보다 힘든 것이 성장한 아들입니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사용하는 무기가 있습니다. 6살 때는 “유치원 안가?”입니다. 7살 때는 “학교 안가” 중학교 때는 “교회 안가?”입니다. 청년 때는 “백 댄스 하는 여자를 데리고 와서, 나 결혼할 거예요”입니다. 그러면 “내가 숨넘어가는 꼴 보려고 이러나”하면 “숨넘어가세요!” 합니다.

 

남편과 아버지는 가장으로, 직장과 사업 그 어느 것 하나라도 중요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자녀교육에 대한 책임이 아버지에게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흔히 남편이, 남편이 아내에게 “당신이 왜 이렇게 아이를 가르쳤어!”, “당신은 집에 있으면서 아이가 그렇게 되도록 무엇했어!” 말하는데 이것은 틀린 말입니다. 어떤 핑계를 가지고도 자녀교육에 아버지가 제외될 수 없습니다.

 

(엡6:4)“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골3:21)“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이것이 성경의 가르칩니다.

 

엘리제사장은 하나님의 제사장이었지만, 아버지의 역할을 잘 감당하지 못함으로 두 자녀들이 불량자가 되었고, 사무엘 또한 위대한 선지자, 제사장이었지만, 아버지의 역할을 잘 감당하지 못함으로 두 자녀들이 모두 부정한 일을 행하였습니다. (삿8:3)“이익과 노물을 받고 판결하였다.”

 

요한 웨슬리는 “우리가 장차 하나님 앞에 설 때 세 가지 질문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첫째 “네게 준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느냐?” 둘째는 “네게 준 돈을 어떻게 썼느냐?”그리고 셋째는 “네게 준 자녀를 어떻게 가르쳤느냐?” 당연히 저와 여러분들도 답변을 해야 합니다.

 

(딤후3:15-16)“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성경은 아이를 “갖춘다.” “무장한다.” 고 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은 좋은 믿음의 아버지가 되길 바랍니다.

 

  1. 아내에 대하여 좋은 믿음의 남편이 되라.

라이브사이언스 닷컴”에 따르면 “여자는 남자를 어느 정도 정확하게 알고 있는 반면, 남자들은 여자의 마음을 잘 모르며, 동전 던지기에서 나오는 확률 정도로 불확실하다.”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좋은 남편이 되는 비결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벧전3:7)“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지식을 따라”란 아내를 잘 알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남편들이 여자에 대하여 꼭 알아야 할 사항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첫째, 자신을 존중해 달라. “함부로 대하지 말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상 모든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는 함부로 대하는 것입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것이지 무슨 잔소리냐?” 여자들은 자신을 막무가내로 막 대하는 남자들을 경멸합니다.

 

룻이 보아스를 만나 청혼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룻기2:8-9)“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그들의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의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이 말을 들은 룻은 (룻기2:10, 13)“룻이 땅에 엎드려 절하며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룻은 보아스의 배려를 받는 순간, 그의 아내가 되기를 결심했습니다.

 

둘째, 남편과 함께 공유하고 싶다.

베드로는 아내를 (벧전3:7절)“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나는 당신과 함께 모든 것을 공유하고 싶다”는 말입니다. 부부가 다툴 때보면 “그것을 왜 이제 말해요!”라고 말하는 것을 봅니다. 남자들은 종종 아내가 걱정할까봐 밖에서 일어난 일을 말하지 않으려 하지만, 여자는 그것이 좋은 일이든 걱정스러운 일든지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아내는 집안의 대소사, 남편의 직장, 그리고 특히 집안의 경제적인 면을 공유하고 싶어 합니다. 여자 분들이 제일 속상해 하는 것이 이 부분입니다. 돈 문제를 비밀로 한다거나, 남자 혼자 독점하면 여자는 “나는 여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영적인 것을 함께 공유하길 원합니다.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하라” 기도와 예배, 교회 봉사도 같이 하길 원합니다. 아내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남편이 믿음에서 떨어 질 때입니다. 주일날인 데도 남편이 친구들과 어울려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마음이 무거움을 느끼게 됩니다. 아내가 원하는 것은 신실한 믿음의 일군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 사랑받고 싶다. 베드로는 남편들을 항해 “아내를 귀히 여기라”고 했는데, “아내를 사랑하라”는 표현입니다. 이런 통계도 있습니다.99.9%의 여자들은 예쁘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며, 여자가 사랑에 빠지면 76%의 여자들은 남자의 거짓말을 별 의심 없이 믿는다.” 그래서 여자는 100유로 선물을 한번 받는 것보다 10유로 선물을 열 번 받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남편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남자에게 예뻐 보이고 사랑받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옷입니다. (잠31:22)“그는 자기를 위하여 아름다운 방석을 지으며 세마포와 자색 옷을 입으며” 저는 기독교는 이토록 풍성한 종교인줄 몰랐습니다.

기독교는 남을 위해 희생을 가르친 반면, 자신을 위해서 최대의 것을 누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치해라는 말이 아닙니다. 가족과 이웃을 위해 희생했다면 당연히 자신을 위해서도 최고의 것을 누릴 특권이 있다는 뜻입니다.

 

남자에게 옷은 그냥 걸치는 것이지만, 여자에게 옷은 필수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남편이 여자가 옷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곧 자신을 비판하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당신 참 예쁘다.”라는 말 한마디가 내가 이 남자와 결혼을 참 잘했구나! 생각하는 것이 여자입니다.

 

벌과 뱀은 똑같이하늘에 내린 이슬을 먹었음에도, 벌은 꿀을 만들고 뱀은 독을 만듭니다. 칭찬을 받는 여자와 무시를 받는 여자가 만들어 내는 것도 꼭 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칭찬과 격려, 사랑하는 마음을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1. 아버지에 대하여 좋은 믿음의 아들이 되라.

“29살, 열 네 시간을 기다려서 자식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지만, 당신도 모르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37살…자식이 학교에 들어가 우등상을 탔습니다. 당신은 그 액자를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두었습니다. 44살…약수터에서 이웃 사람들이 자식이 아버지를 닮았다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당신은 괜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48살….자식이 대학 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당신은 평소와 같이 출근했지만,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54살…자식이 첫 월급을 타서 내의를 사왔습니다. 당신은 내의가 있는데 사왔다고 했지만, 밤이 늦도록 그 내의를 입어보고 또 입어 봤습니다. 61살…딸이 시집가는 날이었습니다. 딸은 도둑 같은 사위 얼굴을 보고 함박웃음을 피웠습니다.

 

당신은 나이 들고 처음으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오직 하나 자식 잘되기만을 바라며 살아온 한평생 이제는 희끗희끗 머리로 남으신 당신…우리는 당신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몇 해 전 삼성생명이 광고한 내용으로, 오늘의 아버지 상을 숨김없이 표현한 글로, 많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요즘은 “아버지 수난시대”라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아버지의 권위가 절대적이었지만, 지금은 아버지가 설 곳이 없습니다. 자식의 입에 맛있는 음식을 먹이기 위해서 거친 음식을 드셨고, 자식에게 좋은 것을 입히기 위해서 언제나 똑같은 옷을 1년, 12달 입었으며, 자식들에게는 무식한 소리 듣지 않게 하려고 자신이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바로 아버지입니다.

 

우리말에 “배운 며느리에게 밥 얻어먹기 힘들다.”는 말은 오늘 현실을 잘 보여주는 말입니다. 오늘날 자녀들은 대부분, 연세가 든 부모님을 모시기보다 양로원, 요양원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의 부모는 부모의 품안에서 키웠는데, 자식은 부모를 집밖으로 쫓아내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 요셉은 아버지를 잘 모셨습니다.(창47:11-12)“요셉이 아비와 형들에게 거할 곳을 주되, 아비의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식물을 주어 공궤하였더라.” 요셉의 태도가 더욱 귀한 것은 아버지와 함께 살고자 했던 마음입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을 17년 모셨습니다.

 

한자“효(孝)”란 “자녀가 부모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 효입니다. (엡6:1-3)“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우리는 외국에 살고 있기에 부모를 직접 모시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자주 전화도 드리고, 용돈도 보내어 드리고, 생신 축하도 해 드리길 바랍니다.

 

남선교회 여러분! 아들에 대하여 좋은 믿음의 아버지가 되길 바랍니다. 아내에 대하여 좋은 믿음의 남편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하여 좋은 믿음의 아들이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