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괴테, 톨스토이

세상에 위대한 작가와 시인이 많지만, 그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세 사람이 있다. 셰익스피어, 괴테 그리고 톨스토이이다. 영국의 셰익스피어가 인간과 인간관계를 노래했다면, 독일의 괴테는 인간과 자연을, 그리고 러시아의 톨스토이는 인간과 신과의 관계를 노래한 작가라 할 수 있겠다.

셰익스피어,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 1795-1881)이 “셰익스피어를 인도와 바꾸지 않겠다.”라고 한 말보다 셰익스피어를 잘 대변해 주는 말은 없을 것이다. 엘리자베스 여왕(1558-1603)시대에 살았던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는 영국이 낳은 세계 최고의 대문호(大文豪), 언어의 마술사, 천재적 극작가라는 칭호를 받고 있다. 동료 극작가인 벤 존슨이 “셰익스피어는 당대뿐 아니라 만세(萬世)를 통해 통용되는 작가”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셰익스피어는 영국이 아닌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작품을 많이 썼으며, 사극, 희극, 비극, 희비극 등 연극의 모든 장르를 섭렵(涉獵)하였다. 전반기(1594-1600)에는 주로 “헨리 6세, 4세” “리처드 3세, 2세”, “베니스의 상인”과 같은 역사극과 희극을 썼다. 낭만 비극의 걸작(傑作)인 “로미오와 줄리엣” 또한 이 시기에 탄생됐다. 셰익스피어가 세계 문학사에서 불후(不朽)의 작가로 우뚝 서게 된 것은 그의 생애 후반기(1600-1608), 4대 비극을 쓰면서부터였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은 그의 작품의 절정이자 세계문학의 금자탑(金字塔)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4대 비극 중 가장 먼저 쓴 “햄릿”(Hamlet)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대사처럼 인간이 갖고 있는 정의와 불의, 생(生)과 사(死)의 갈등을 조명하고 있으며, “오셀로”(Othello)는 사랑과 신뢰와 질투의 문제를, “리어왕”(King Lear)은 애정의 혼선이 우주적 질서의 붕괴로 확대되는 과정을 그렸다. 마지막 “맥베스”(Macbeth)는 무력으로 왕위를 찬탈함으로 초래되는 비극을 보여 주고 있다. “안토니오와 클레오파트라”, “줄리어스 카이사르”의 슬픈 비극도 이 무렵에 완성 됐다.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모든 감정과 의지를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최대의 효과로 전달하였다는 점에서 자기 완결적(自己 完結的)인 작가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의 작품은 450년이 지났건만 시공을 초월하여 현재까지 깊숙하게 내재(內在)하고 있다. 오늘날 영어의 발전과 풍부한 표현력은 셰익스피어에게 크게 빚진 것은 말할 것도 없으며, 셰익스피어는 햄릿, 리어, 멕베스, 클레오파트라 등 수많은 인물을 만들어 냈다. 그들은 물론 허구이지만 그 사실성은 실재를 능가한다. 동시에 극중 인물들의 함수 관계를 통해 기업의 경영과 인사관리 그리고 리더십의 모델을 제시해 주고 있다. 안토니오에게는 설득의 기술을, 햄릿이라는 우유부단한 인물을 통해서는 결단의 중요함을, 템피스터에 등장하는 프로스페로에게는 책임과 승리의 가치를 배울 수 있게 한다.

괴테,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만약 독일 민족이 이 지상에서 멸망해 버린다면, 그때 그 이름을 가장 빛나게 해주는 것은 ‘니벨룽의 대서사시’와 괴테의‘파우스트’다.” 독일 문학사에서 괴테를 언급할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구절이다.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있다면 독일에는 괴테가 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는 독일의 최고의 문인이자 작가이며, 바이마르 대공국에서 재상을 지내기도 하였다.

그는 불과 20대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작품 하나로 전 유럽에 노란 조끼를 유행시키기도 했다. 특히 “파우스트”는 괴테가 23살 때부터 쓰기 시작하여 83세 죽기 1년 전인 1831년에 완성한 생애의 대작으로, 세계 문학사에 걸작품으로 추앙 받고 있다. 괴테는 “자유도 생명도 매일 정복해내는 사람만이 누릴 자격이 있다.”라고 말했지만, 파우스트에서는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라고 피력하기도 했다. 그것은 인간이 절대자의 우호와 기존 질서와 종교의 틀을 박차고 진리를 추구한다고 해도 결국 인간 스스로는 방황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 그의 모순어법에 담긴 의미는 놀랍도록 크며, 통찰력 또한 날카롭다고 하겠다.

괴테는 문인으로만 머물지 않았다. 국왕의 고문으로 문화, 교육, 산업, 예술 등을 총괄하는 정치인이었고, 식물학, 동물학, 광물학, 기상학 등 과학자로서 업적도 수 없이 남겼다. 더 중요한 것은 괴테가 출생할 당시 독일어가 유럽의 지방어라는 인식을 면치 못했지만 괴테가 쓴 작품으로 독일어를 일약 세계적인 언어로 격상시켰다. 이후 독일이 문화강국으로 자부심을 말할 때마다 가장 먼저 괴테를 앞세우게 됐다. 이런 이유 때문에 독일의 괴테 사랑은 남다르다. 괴테에 대한 관심은 단순히 작가로 끝나지 않고, 국가 브랜드로 연결시키고 있다. 독일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괴테 문화원”(괴테 인스티튜트, Goethe-Institut)이다. 문호 괴테의 이름을 딴 “괴테 인스티튜트”는 2013년 현재, 전 세계 91개국 167개 지역에 설립되어 있다. 괴테 문화원은 해외에서 독일어와 독일문화를 알리고 국제문화교류 활동을 지원할 뿐 아니라 정통 독일어 교육은 물론 독일에 관한 문화, 사회, 정치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독일이 괴테를 앞장세우고 있는 이유는 괴테가 한 말에서 찾을 수 있다. “평상시에 애국심은 앞마당을 쓸며, 가정에 충실하며, 세상일을 학습하며, 나라의 번영에 기여하는데 있다.”

톨스토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Nikloaevich Tolstoi, 1828-1910)는 그의 단편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1885)에서 세 가지 질문과 답을 주고 있다. 첫 번째 “사람의 마음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묻고 있다. 이에 대해 “사람의 마음에는 사랑이 있다.”라고 답한다. 두 번째 질문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인데, 이에 대해 “사람에게는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능력이 주어지지 않는다.”라고 답한다. 그리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세 번째 물음에 대해 톨스토이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을 돌보고 계획했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사랑이 있기 때문에 살아 갈 수 있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이다. “부활”(1899)과 “전쟁과 평화”(1867) 그리고 “안나 까레니나”(1875)는 그의 3대 걸작품으로 꼽힌다.

그 중에 부활은 예술 작품으로써 뿐만 아니라, “톨스토이즘”이란 사상을 낳게 할 만큼 중요한 작품이라 하겠다. 이런 이유로 프랑스의 비평가였던 로망 롤랑(1866-1944)은 “부활은 톨스토이의 예술적 성서이며, 최후의 불꽃이다.”라고 평가했다. 로망 롤랑이 표현했듯이 “전쟁과 평화가 톨스토이의 성숙기였다면, 부활은 그의 최후의 빛남이요, 최고의 봉우리다.”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톨스토이와 견해를 달리했던 러시아 끄로뽀뜨낀조차 부활만큼은 “고희에 이른 노작가가 보여준 정력과 젊음은 실로 경탄할 정도다.”라고 경이를 표했다.

톨스토이는 인간이 가진 허위와 형식을 벗겨내고 최상의 리얼리즘을 성취하고자 했다. 그의 삶과 작품은 크게 “휴머니즘적인 톨스토이”와 “청교도적인 톨스토이”가 서로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결국은 청교도적인 톨스토이를 갈망하고 있다. 그의 신앙관이나 청교도적인 색채는 “참회록”, “하나님의 나라는 당신 안에 있다.”에서 여실히 잘 드러나고 있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인생관을 배경으로 모든 독자에게 세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은 언제인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인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일은 무엇인가?”

동시에 그는 세 가지 질문에 대한 해답도 말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은 지금이며,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며,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일은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사람에게 선을 베푸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