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水), 불(火), 바람(風)

지난 2007년 영국의 BBC가“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50 곳”가운데 하나로 물의 도시 베네치아와 아이슬란드를 선정했다. 베네치아는 당대 최대 최고의 문인과 예술가들이 가장 많이 찾아간 곳이며, 아이슬란드는 빙하가 용암을 덮고 있는 나라다. 그리고 네덜란드는 가장 많은 바다를 육지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나라다. 이름만 떠 올려도 흥분되는 베네치아, 아이슬란드, 네덜란드는 물과 불, 그리고 바람의 도시와 나라라고 할만하다.

물이 시()가 된 도시, ()가 도시를 살리다.

셰익스피어의 “오델로”“베니스의 상인”의 무대가 된 곳, 윌리엄 딘 하우얼스가 “오! 이방인이여, 그대가 누구든 이 마법의 도시를 처음으로 여행한다면, 나는 그대를 행운아라고 말하고 싶소… 그런 다음에는 영원히 그리워하게 될 것이오!”라고 노래한 곳, 존 러스킨이 “내가 여기에 있는 것에 감사한다. 이곳은 도시들 가운데 낙원이다.”라고 한 곳, 조르주 상드와 알프레드 뮈세의 전설적인 사랑의 무대, 안토니오 비발디가 사계를 작곡한 곳, 문호 괴테조차 “내 운명의 책에 씌어진 대로 1789년 9월 28일 저녁, 나는 처음으로 베네치아를 보았다.”라고 감격했던 곳, 그리고 헤밍웨이가 소설을 썼던 이곳이 바로 물의 도시, 베네치아(Venezia)다.

당대 세계 최고 최대 문인들과 수많은 예술가들이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 매혹되어 시정(詩情)을 노래하며, 그 아름다움을 그림에 담아냈다. 그들은 한결같이 베네치아를 그리워하며 그곳을 찾았고 또한 떠나길 아쉬워했다. 시인 바이런은 “한때의 영화보다 불행한 날의 베네치아가 내겐 더 소중하다…아름다움은 아직 여기에 머물러 있다.”고 했을 정도로 매혹에 빠져들었다.

존 러스킨은 쇠퇴해 가는 베네치아의 영광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붓을 들었다. 그는 전지 168장이나 되는 분량 위에 3천 종류가 넘는 그림을 빼곡하게 화면에 담아냈다. 118개나 되는 인공 섬과 177개의 운하, 그리고 400개가 넘는 다리로 이루어진 베네치아, 아드라이 해의 해상 무역권을 장악하고 막강한 부와 권력을 지닌 해상왕국의 영광, 그리고 나폴레옹의 침공으로 쇠퇴한 베네치아까지 빠짐없이 스케치하여 후대에 남겼다. 베네치아가 여러 주인, 나폴레옹에 이어 오스트리아와 그리고 이탈리아에 편입되는 과정을 거치면서도 영광은 소멸되지 않았다. 그것은 많은 예술가들이 화폭에 담아 낸 그림과 문인들이 읊은 시와 노래 덕분이 아니겠는가? 그 덕분에 베네치아는 지금도 1년에 무려 1300만 명이나 되는 관광객들을 맞이해야 하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얼음으로 땅을 감춘 나라, 불은 감추지 못하다.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는 986년경 바이킹족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들은 얼음뿐인 쓸모 없는 땅을 발견하여 “초원의 땅”(그린란드, Greenland)이라 불렀고, 반면 살기 좋은 땅을 “얼음의 땅”(아이슬란드, Iceland)이라고 지었다. 정작 관심이 있는 땅을 아이슬란드, 별 관심이 없는 땅을 그린란드라고 했다. 이는 자신들이 갖고 있는 땅에 대해 타인들이 관심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그들의 전략 때문인지 몰라도 아이슬란드는 오래도록 바이킹족의 땅이 되었다.

그러나 아이슬란드가 오랜 동면의 잠을 깨고 세상에 들어 나게 된 것은 할리우드 덕택이었다. 할리우드가 007 시리즈의 배경으로 아이슬란드의 최대 유빙호수 “요쿨사론”과 두께가 1km가 넘는 거대한 빙하 “바트나 요쿨”을 세상에 소개하자 사람들이 앞다투어 아이슬란드를 찾았다. “이토록 좋은 줄 몰랐다” 아이슬란드를 찾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그보다 아이슬란드가 확실하게 세상에 공개된 것은 화산폭발이었다. 지난 해 4월, 화산 폭발로 극심한 항공대란이 발생하여 10만 편이 넘는 항공기 운항이 차질을 빚고 승객 8백만 명의 발이 묶였던 적이 있었다. 아이슬란드는 오래 동안 얼음으로 좋은 땅은 감출 수 있었지만 땅 아래에 있는 불(용암)은 감출 수 없었다. 아이슬란드는 상반 된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얼음과 불, 즉 화산으로 표현되고 있다. 1755년에도 카틀라 화산이 폭발해 대 홍수를 일으켰다. 이때 빙하가 녹은 물의 양은 아마존, 미시시피, 나일, 양쯔강의 수량을 모두 합한 것과 맞먹었다. 아이슬란드는 200여 개의 화산이 있고, 지금까지 150여 회의 화산이 폭발했다. 지금도 화산지대의 심장부 “뮈바튼”에서는 마그마가 지표면으로 끓어오르고 쉴새 없이 유황가스를 뿜어내고 있다.

천년 전에는 쓸모 없는 얼음 땅을 “초원의 땅”(그린란드)이라고 했고, 반면 살기 좋은 땅을 의도적으로 “아이슬란드”(Iceland)라고 속였지만 지금은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의 이름을 바꾸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여전히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다.

바람으로 세운 나라, 물 때문에 항복하다.

“낮은 땅”이란 뜻을 가진 네덜란드는 튤립의 나라, 풍차의 나라로 알려져 있다. 마치 아름다운 동화를 연상케 하는 나라, 그래서 누구나 한번쯤 가고 싶어하는 동경의 나라다. 이뿐 아니다. 작지만 거대한 나라, 유럽에서 성 개방을 가장 먼저한 나라, 하지만 국가투명도 국민청결지수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깨끗한 나라, 3살 때부터 상술로 화술, 언어를 가르치는 나라, 집집마다 독일폭격기 “수투카”모형이 거실에 달려있는 나라, 꽃이란 꽃을 세계에 최초로 팔아먹은 나라, 자전거의 강국, 왕국, 대국, 천국으로 불리는 나라, 그리고 바람으로 생존한 나라 등이다.

네덜란드는 국토의 4분의 1정도가 바다 수면 보다 낮고, 국토의 5분의 1은 간척한 땅이다. 바다보다 낮은 곳에 살고 있기에 언제나 제방아래서 살고 있다. 댐이나 보를 막아 강, 운하, 호수로 만든 것이 4400㎞에 이른다. 암스테르담, 로테르담, 레르담, 볼렘담 등 “담”으로 끝나는 도시들은 모두 댐을 막아 만든 도시들이다. 역사 자체가 물과의 투쟁이었고 물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둑을 쌓아 물을 퍼내야 했고, 바람으로 물을 퍼내는 풍차는 필수적이었다.

이런 역사를 대변이라도 하듯 “한스 브링커 소년의 이야기”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한스 소년은 방파제 구멍이 뚫려 물이 세는 것을 보자 자신을 희생하므로 물을 막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정작 네덜란드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풍차는 돈키호테의 낭만적이고 해학적인 그런 풍차가 아니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네덜란드 사람들은 “하나님이 세상을 만들었지만 네덜란드는 사람이 만들었다.”라고 말하길 좋아한다.

이런 약점을 잘 알고 있었던 히틀러는 생각보다 쉽게 네덜란드를 자신의 손에 넣을 수 있었다. 1940년 5월14일 히틀러는 2700여대의 전투기를 총 동원하여 베네룩스 삼국, 네덜란드와 벨기에 그리고 룩셈부르크를 향해 최대의 항공작전을 펼쳤다. 말 그대로 독일의 공군력을 총동원한 작전이었다. 97톤이나 되는 폭탄을 퍼부어 로테르담을 삽시간에 폐허로 만들었다. 바르샤바의 악몽이 재현되는 순간이었지만 끝까지 항복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항복하지 않으면 제방을 폭파하겠다.”라는 말 한 마디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온 도시가 폐허가 되고 1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었음에도 맞서 싸웠지만 제방을 폭파하겠다는 선전포고에 모든 국민들은 힘없이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일찍이 “불타고 남은 자리는 있어도 물 지나간 자리는 아무것도 없다.”라는 명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