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한국에서 나그네가 쉬어 가는 곳을 주막(酒幕)이라 했다. 술도 마시고 잠도 자는 곳이란 뜻이다. 한국 역사가운데 술에 대한 기록이 적지 않다. 영화나 TV 사극에서 술과 주점이 빠지는 법이 없다. 마찬가지로 유럽역사 또한 술을 빼놓을 수 없다. 오히려 유럽인들이 한국보다 술에 대하여 더 적극적이고 보편적이다. 다른 점은 술을 마시는 동기다. 일반적으로 한국인은 좋은 술이 있어 한잔 하자고 하지만, 유럽인은 음식이 있어 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에게 술은 선택 사항이지만, 유럽인에게 술은 음식을 위해 필수 사항으로 생각하고 있다.
600만의 맥주축제,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
맥주하면 “황태자의 첫 사랑”의 무대인 하이델베르크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맥주의 본고장은 독일의 뮌헨이다. 독일은 전 세계에서 맥주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다. 심지어 미성년을 위해 알코올을 뺀 맥주도 보편화되어 있다. 독일의 어느 식당을 가더라도 맥주와 함께 식사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독일에서 “비어가르텐”은 프랑스나 스페인, 이탈리아의 “카페”나“카페테리아”처럼 독일인들이 맥주를 마시며 인생을 논하는 곳이다. 대부분의 독일인들이 맥주와 함께 곁들여 먹는 음식 가운데 소시지를 빼놓지 않는다.
세계 3대 축제 중 하나인 옥토버페스트는 세계 최대규모의 맥주축제다. 1810년부터 시작된 축제는 올해로 178회 째를 맞이했다. “10월 축제”라고 하지만, 정확히 말해 9월 하순부터 10월초까지 두 주간에 걸쳐 열린다. 보통 축제 때가 되면 유럽과 세계 도처에서 600만 명 이상의 맥주 애호가들이 모여들며, 그들이 축제 기간 동안 마시는 맥주는 무려 700만 리터나 되며, 1,000개 이상의 독일 맥주 업체가 참가한다고 지역 신문이 전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보통 5,000명 이상이 들어갈 수 있는 초대형 텐트, 여러 개를 쳐놓고 주변 외곽을 포함하여 약 10만 여명이 동시에 앉을 수 있는 공간이다. 1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초대형 실내 공간에서 1리터 짜리 맥주 잔을 부딪치며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건배하는 풍경은 옥토버페스트의 최대 압권이다. 텐트 안으로 들어가면 불문곡절 1리터 짜리 맥주를 내오는 것이 보통이다. 1리터 짜리 다섯 잔, 즉 5,000 CC도 거뜬하게 마시는 사람도 허다하다. 축제가 생긴 이래 나폴레옹 전쟁과 1,2차 세계대전, 그리고 경제 위기 등으로 인해 총 24번 열리지 못했다.
맥주는 기원전 3000년경 고대 이집트에서 만들었다고 전한다. 맥주가 유럽에 들어 올 때는 이미 와인을 즐겨 마시고 있었기에 맥주는 야만인들이 마시는 것으로 경멸했다. 11세기 경에 맥주가 항균효과가 있다는 소문과 함께 유럽 전역에 확산되었고, 16세기에 접어들면서 독일사람들이 가장 맥주를 선호하게 되었다. 아시아에서 맥주는 일본이 가장 먼저 수입했다. 1876년 독일의 제조기술을 전수 받아 새운 것이 “삿포로 맥주”다. 한국에 맥주가 상륙한 것은 구한말 “삿포로맥주”를 통해서 들어왔다. 굳이 맥주의 계보를 따지자면 독일의 맥주는 한국맥주의 할아버지뻘 되는 셈이다.
170km, “알자스의 포도주 길”(La Route des Vins)
포도주는 유럽역사와 함께 시작되었고, 나아가 포도는 인류의 문명이 시작되면서부터 끊임없이 재배되어 왔다. 고대로마와 그리스는 와인 신을 신봉했고, 영토를 확장하는 곳마다 포도 재배를 장려했다. 로마제국 이후에는 교회가 포도주를 성찬예식에 사용하면서 더욱 포도주 문화는 가속화되었다.
유럽에서 생산되는 포도주는 곧 자국의 자존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랑스의 보르도, 이탈리아의 끼안티, 스페인의 쉐리, 포르투갈의 포르토, 그리고 독일의 라인과 모젤 와인 등은 저마다 고품질을 자랑하며, 맛과 질을 넘어 자존심 그 자체라 할만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포도주는 지중해 음식 가운데 첫번째 자리에서 내려온 적이 없다.
그럼에도 포도주를 말할 때 가장 먼저 프랑스를 떠올리게 되며, 프랑스에서 알자스 지방의 포도주를 빼놓을 수 없다. 알자스 포도주는 A. D. 1세기, 로마시대부터 포도재배 기술을 전수 받아 지금껏 2천년 동안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알자스 포도주를 말할 때에 “알자스의 포도주 길”(La Route des Vins)을 빼 놓고는 설명이 안 된다. “알자스의 포도주 길”은 무려 170㎞나 되는 장대한 거리로, 계곡과 산자락에는 마치 석류 알처럼 5,450농가들이 곽 들어차 있고, 포도주를 제조하는 회사만도 1,000여 개 업체들이 포도밭 사이에 포위되어 있다.
“보쥬산맥”에 펼쳐진 “포도주 가도, 170km”는 끝없는 포도원과 앙증맞게 피어 있는 수많은 꽃들이 장식하고 있다. 길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있는 가옥들 또한 춤을 추듯 나타났다 사라졌다하는 풍경은 알프스의 느낌과 전혀 다른 색감과 맛을 선사한다. 여름의 끝과 가을을 시작하는 계절, “알자스의 포도주 길”보다 깊은 가을의 서정을 느끼게 하는 곳이 또 있을까 싶다.
포도밭의 포도는 햇빛과 건조한 것을 아주 좋아하는 한편 저장된 포도주는 햇빛과 건조함 그리고 흔들림을 아주 싫어한다. 사람들 가운데 햇빛과 건조함을 좋아하는 포도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햇빛과 건조함을 싫어하는 포도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이 전자는 매우 장려하지만, 후자는 제한을 하거나 혹은 제한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람으로 히포크라테스를 들 수 있다. “알맞은 시간에 적당한 양의 와인을 마시면,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2500년의 역사를 지닌 금언(金言)이자, 명의(名醫)가 내린 처방을 누가 감히 반박할 수 있겠는가?
최고의 상, “스카치 위스키”(Scoch whisky)
“스코틀랜드”하면 떠올리게 되는 두 가지가 있다. 장로교의 본산지라는 것과 스카치위스키의 본 고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오직 위스키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스코틀랜드하면 위스키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전체인구의 18% 이상이 위스키와 관련된 산업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해 스코틀랜드 국세청은 해외로 수출한 위스키가 10억 병이 넘었다고 보도했다.
영국왕실은 1953년도에 엘리자베스 여왕 2세의 50주년 취임식을 기념하기 위해 “시바스 리갈 로얄 살루트 50년 산 위스키” 225병을 한정 생산했다. 병 당 가격이 1만 유로이지만, 이제는 제 아무리 많은 돈을 주고도 살수 없는 골동품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2003년 5월, 영국 왕이 세계 최초 에베레스트 등정 성공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25병 가운데 첫번째 스카치위스키를 영국의 에드먼드 힐러리 경에게 헌정했다. 영국과 스코틀랜드인들은 위스키의 종주국인 영국 왕이 수여하는 스카치위스키를 받는 것을 최고의 상을 넘어 영광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한국 주류원장(김남문)이 한국인들이 술을 마시는 이유와 종류를 이같이 말했다. 맥주는 피로나 스트레스 해소할 때에, 포도주는 연인이나 이성간에, 그리고 위스키는 손님을 접대할 때 마신다고 했다. 그에 비해 유럽국가 중 지중해 연안인 이태리, 프랑스 남부, 스페인, 포르투갈이 포도주 문화권이라 한다면, 독일과 북부 프랑스, 네덜란드 중부 유럽은 맥주 문화권, 그리고 영국과 아일랜드 등은 위스키 문화권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한국에서 술은 환경에 따라 마시는 종류가 다르지만, 유럽은 지역과 기후에 따라 마시는 종류가 달라진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