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9일 주일 설교 “이제! 눈을 감을 수 있나이다.”

성경 : 누가복음 2 : 25-32

제목 : “이제! 눈을 감을 수 있나이다.”                                         2015.11.29

교회력에서 오늘부터 성탄절 전까지 4주간을 “대림절”“대강절”이라고 합니다. 대림절이란 예수님께서 이 땅위에 오신 성탄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성탄의 참된 의미는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의미를 깨닫는데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시므온은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며 기다렸습니다. “시므온”이란 이름은 유대 사회에서 아주 평범한 이름이지만 그의 믿음은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대림절을 맞이해 시므온이 어떻게 주님은 만날 준비를 하고, 기다렸는지 함께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시므온은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하였습니다.

(25절)“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누가는 시므온을 “의로운 사람”이라 하였습니다. “의롭다”는 “옳다”란 의미로, 여기서는 “하나님에 대한 의무를 충실히 감당한 사람”을 뜻합니다. 시므온은 “하나님에 대한 의무를 충실히 감당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많은 의무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4대 의무가 있습니다. “국방의 의무, 납세의 의무, 교육의 의무, 그리고 근로의 의무”입니다. 스페인 헌법 1조는 “스페인은 사회적 민주적 법치국가이며, 법질서의 최고의 가치는 자유, 정의, 평등 및 정치적 다원주의”이다. 주권은 스페인 국민에게 있고, 국가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우리는 국가에 대한 의무, 사람에 대한 의무를 잘 감당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한 의무를 충실하게 감당한 사람”을 “의롭다.”라고 합니다.

시므온은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경건”은 “신실하다, 두려워하다.”란 뜻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철저하게 지킨 사람”을 말합니다. 누가는 고넬료의 신앙을 말할 때 “경건하다.”라고 표현했는데, 이것은 고넬료가 하나님에 대한 의무와 율법을 충실하게 잘 준행한 것을 말합니다.

시므온은 매우 나이 많았음을 알 수 있는데, 전해 오는 기록에 의하면 113세였다고 말하지만, 근거는 없지만 나이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나이 많은 시므온의 관심은 오직 주님을 만나는 것이 소망이었습니다. 주님을 만나기 위해 믿음을 준비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나이가 들면 확신과 모험이 사라지고, 염려와 근심이 많아집니다. 노후에 대한 염려, 건강과 자식에 대한 염려 등이 많아지며, 또한 고집이 늘고, 자존심이 강해집니다. 지는 것이 싫습니다. 그래서 뭐든지 자기주장과 고집대로 하고자 합니다. 무엇보다 나이가 들수록 욕심이 많아집니다. 내 손에 쥐고 있어야 안심이 됩니다. 그래서 자꾸 내 것으로 만들려는 욕심이 늘어납니다.

나에게 염려와 고집, 욕심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면 내가 이제 나이가 들어가는 구나 생각하면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므온은 나이가 들수록 “의롭고 경건한 자”로 살았습니다. 우리가 한살 더 먹을 때마다 믿음을 더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에 만남에 대한 두 비유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열 처녀 비유입니다. 지혜 있는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했지만,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신랑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은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입니다. 열 처녀 비유는 기름을 준비한 자만이 주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주님이 오시면 우리는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언제 주님 앞에 서게 될 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는 항상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믿음의 준비를 해놓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역사를 보는 두 관점이 있는데, 하나는 원과 같이 계속 반복된다는 윤회적 역사과, 역사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는 직선적 역사관입니다. 불교가 윤회적인 역사관을 갖고 있습니다. 윤회적인 역사관은 사람을 무책임하게 만듭니다.

부부가 못마땅하거나, 싫으면 노력해서 고치려고 하지 않고 “다음 세상에서 좋은 사람과 만나자”라고 말합니다. 현실에서 실수나 부족을 노력 하려고 하기보다 회피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인생은 한번뿐이라고 말합니다.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여러분! 우리가 좀 부족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고후13:5)“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인간의 가치는 소유나,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믿음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믿음을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시므온은 약속을 믿고, 주님을 기다렸습니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한국인들의 빨리빨리 베스트 10”을 뽑은 적이 있습니다. 화장실 들어가기 전부터 지퍼 미리 내리기 / 삼겹살이 다 익기 전에 먹기 / 엘리베이터에서 2초도 못 참고 “닫힘” 버튼 누르기 / 3분 기다려야 하는 컵 라면을 1분도 되기 전에 뚜껑 열기 / 웹 페이지가 3초안에 안 열리면 닫아버리기 /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구입한 뒤 먼저 마시고 계산하기 /

구약성경에 흐르는 사상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메시야의 약속”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비롯 많은 선지자들이 다윗의 혈통을 통해 “메시야”가 오실 것을 약속했습니다.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유대인의 왕으로 오실 것까지 구체적으로 약속해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이 약속을 믿고, 메시야를 기다렸지만, 대부분은 중간에서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시므온은 선지자들의 약속을 믿고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25절)“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26절)“저가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당시 이스라엘은 로마 식민지였고, 모든 식민지 백성들은 로마 황제를 신으로 섬겨야 했고, 그 과정에서 경건한 신앙인들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시므온은 구약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야가 올 것”이란 약속을 믿고, 참고 기다렸습니다. 시므온”이란 이름은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라는 뜻인데, 그의 이름과 같이, 그는 메시야를 기다린 결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기다림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을 이루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믿음의 사람들은 기다리는 시간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노아는 120년 동안 방주를 지으며 약속을 이루었고, 모세는 40년 동안 광야에서 양을 먹이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었습니다. 야곱은 20년간 머슴살이를 하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했습니다.

또한 기다림은 소망을 의미합니다. 독일 뮌헨 근교 “다카우”라는 수용소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1945년 연합군에 의해 해방될 때까지 12년 동안 약 3만5천 명이 죽은 곳입니다. 그들은 수용소에서 처참하게 죽어가면서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나는 믿는다. 태양이 빛나지 않을 때에도 태양이 있음을. 사랑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사랑이 있음을.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에도 하나님이 계심을. 영원한 평화의 그 날이, 더딜지라도 그 날이 반드시 오리라는 것을 나는 굳게 믿는다.

산모가 출산을 기다리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많은 변화가 있습니다. 부부가 평소 기도하지 않았더라도 아기를 가질 때만큼 열심히 기도합니다. 남편은 열심히 일합니다. 온 가족이 기쁨으로 양보합니다. 이것은 출산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사람이 기다리는 시간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기다리는 시간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을 이루는 시간입니다.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소망”을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약속을 믿고 기다린다는 것은 그만큼 소망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반면, 우리의 삶에서 기다림이 없어질 때 그것을 “절망”이라고 합니다. 쉽게 낙담하며, 기다리지 못합니까? “약속”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든 생활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기다림은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라 “마음을 설레게 하는 약속과 소망이 담겨져”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약속을 믿고, 소망한 바를 끝까지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시므온은 주님을 만나고, 눈을 감을 수 있었습니다.

시므온은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눅2:29-32)“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시므온의 찬송(Nunc dimittis)”(눈크 디미티스)라는 찬송입니다. “주재여! 놓아주시는 도다.”는 우리말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로, 시므온은 구원자이신 예수를 보았으니 “이제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있습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종종 “나는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했다거나, 뜻을 다 이루지 못했을 때, 예상치 못하고 세상을 떠났을 때에 이런 말을 하게 됩니다.반대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고 말하며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할 일을 다 했다.”, “나의 모든 소원을 다 이루었다.” “그 동안 참으로 행복했다.”“나는 큰 복을 받은 사람이다.”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말입니다.

시므온은 죽음이 두렵지 않았고 오히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무엇이 시므온으로 하여금 이런 고백하며 찬송하게 했습니까? (30절)“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이것이 바로 시므온이 죽음 앞에 담대히 설뿐 아니라, 찬송할 수 있었던 이유였습니다.

화가 렘브란트는 누가복음에 있는 “시므온의 찬송”을 그가 죽던 해인 1669년에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렘브란트는 이마에 깊은 주름과 흰 수염을 가진 노인, 시므온이 어린 아기 예수를 품안에 안은 그림은 바로 렘브란트 자신도 “이제 주님을 모시고 평안히 눈을 감을 수 있다.”는 신앙고백적인 그림입니다.

“4월은 잔인한 달” “황무지”와 같은 작품을 통해서 인생의 허무를 노래한 미국의 대표적인 작가 T. S 엘리엇도 “시므온의 찬송”을 통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시므온의 노래”란 작품을 쓰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시므온과 같이 “구원의 확신”한 사람은 죽음 앞에 담대히 설 수 있고, 찬송할 수 있습니다.

시므온은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믿음을 준비를 하였습니다. 시므온은 약속을 믿고 참고 기다렸습니다. 시므온은 예수그리스도가 구원자라는 사실을 확신하므로 눈을 감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도 언젠가는 주님 앞에 서게 됩니다. 그 날을 위해 시므온같이 믿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주님 앞에 설 때까지 고난과 역경이 온다고 해도 낙심치 말고 끝까지 견뎌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서 우리의 육신과 영혼을 보전해 주신다는 구원의 확신을 갖고, 죽음 앞에서도 담대해 설수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