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2일 주일 설교 원고 / 은혜, 어떻게 나눌 것인가?

성경 : 사무엘상 30 : 18-25

제목 : 은혜, 어떻게 나눌 것인가?

                                                                                         2015.11.22

 

지난 주간 한국에서 전국 노동조합이 큰 집회를 하였습니다. 경찰과 충동을 하면서 집회를 강행하였습니다. 집회의 목적은 “우리가 받을 보수가 적다. 반면 기업주는 가만히 앉아서 부당이익을 챙기고 있다. 회사의 이익을 우리에게 더 돌려 달라.”는 것이 집회 이유였습니다.

 

이런 집회는 스페인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일입니다. 똑같이 일하였는데, 받는 급료가 서로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하루 일하고 100유로를 받고, 어떤 사람은 30유로를 받습니다. 적게 받는 사람은 더 받으려고, 많이 받는 사람은 더 많이 받으려고 싸웁니다.

 

이런 분쟁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누가복음 15장 둘째아들이 아버지가 살아 계심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몫”을 요구한 이야기는 분배가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역시 분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지만 단순히 분배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봄으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잃었다 찾은 기쁨을 함께 공유해야 한다.

본문의 배경을 모두 설명할 수 없지만, 대략 이렇게 전개됩니다. 사울은 다윗이 이스라엘 어느 지역에 있어도 군대를 보내어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블레셋의 땅인 “시글락”으로 피신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3일 동안 시글락을 비운 사이에 아말렉 군대가 쳐들어와 마을을 불사르고 어린아이와 가족들을 모두 사로잡아 갔습니다.

 

다윗과 함께한 백성들은 소리 높여 울었으며, 어떤 사람들은 다윗을 돌로 치려했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30:6)“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다급하다”는 “답답하여 죽을 지경” 이란 뜻입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하나님을 힘입고 용기를 얻습니다.

 

다윗은 가족들과 재산을 도로 찾기 위해서 600명의 군사와 함께 싸움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200명은 지치고 피곤하여 끝까지 싸우러 가지 못하고 도중에 머물렀고, 400명만 아말렉과 싸워 가족과 재산의 물론 아말렉의 소유와 재산까지 전리품으로 빼앗아 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말렉 사람들에게서 빼앗아 온 전리품을 나눌 때 문제가 생겼습니다.

 

전쟁이 나가 전리품을 빼앗아 온 400명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도로 찾아온 물건은 전쟁에 참가하지 않은 200명에게는 아무것도 주어서는 안 된다. 저들의 처자만 데리고 떠나가게 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반면, 전쟁에 참가하지 못한 200명은 가족을 찾은 것만으로 만족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다윗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삼상30:24-25)“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 동일할지니 같이 분배할 것이니라 하고 그 날부터 다윗이 이것으로 이스라엘의 율례와 규례를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다윗은 전리품을 나눌 때 600명이 똑같이 같이 나누도록 하였습니다.

 

전쟁에 참가한 400명의 주장은 그렇게 틀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당신들 가족과 재산을 찾기 위해 목숨을 걸었는데, 너희들은(200명) 중간 시냇가에 놀고 있었지 않았느냐? 그런데 전리품을 동일하게 나눌 수 있느냐?” 전쟁에 참가하지 못하고 시냇가에 머물러 있었던 200명은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 동일할지니 같이 분배할 것이니라.” 이것은 단순히 분배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나누어 할 “은혜”, 즉 “빼앗긴 것을 찾은 기쁨, 회복과 승리의 기쁨을 함께 공유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18절)“도로 찾고”, (19절)“빼앗겼던 것을”, “잃은 것이 없이 도로 찾아 왔고”, (20절)“다 되찾았더니”

 

성도여러분! 주님은 잃었다 다시 찾은 기쁨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15:6-7)“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눅19: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성도여러분! 우리는 수고와 노력을 앞세워 하나님의 은혜를 독점해서 안 됩니다. 우리는 경제의 원리를 앞세워 공동체의 기쁨을 독차지해서 안 되며, 함께 공유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받은 은혜와 영광을 함께 나누는 일입니다.

 

 

  1. 수확의 기쁨을 함께 공유해야 한다.

룻기 2장에 보면, 보아스는 자기 밭에 이삭을 주우러 온 룻에게 이삭을 남겨 놓도록 했습니다. (롯2:15-16)“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에게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또 그를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

 

이것은 가난한 자에 대한 구약의 가르침입니다. 보아스의 이 같은 배려로 룻은 한 에바쯤 이삭을 주웠습니다. 한 에바란 22L로 약 10일분의 양식입니다. 여러분! 요즘 한 달 일해 한 달 겨우 살 수 있는 것과 비교하면 대단한 것입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할 때 뼈 빠지게 수고하였으나 거두지 못했습니다. 농사를 다 지어놓고도 자기가 소유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수고하여 거두어들일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객과 과부와 고아들과 함께 추수와 수확의 기쁨과 즐거움을 나누길 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추수 때 이런 명령을 주셨습니다. (신24:19)“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저들은 수고와 노동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수확에는 참여하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얼마를 구제하거나 도와주라는 뜻이 아닌 수확의 기쁨을 함께 공유하라는 교훈입니다.

 

예루살렘교회도 수확의 기쁨과 즐거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행2:46-27)“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이들은 한때에 누가 더 높은가? 다투기도 하였지만, 공동체가 함께 수확의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롬12:15)“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우리가 함께 살면서 감정을 함께 나누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왕따 하지만, 기쁨과 즐거움을 공유하지 못하는 왕따만큼 큰 것도 없습니다.

 

성도여러분! 우리가 비교적 슬픔에는 잘 동참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기쁨에 동참하는 것은 인색한 편입니다. 슬픔과 기쁨과 함께 동참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수확과 수입이 있을 때 그것이 크던 적든 기쁨을 함께 공유해야 합니다. 공동체가 얻은 수확의 기쁨과 열매를 독점하지 말고 함께 나누는 서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1. 주인의식을 함께 공유해야 한다.

한국사 통론에 “과거 한국사회 귀족이나 양반들이 노비를 부려 농사를 직영하거나 소작을 했을 때 수확량의 1/2을 받았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러나 애굽의 총리였던 요셉은 당시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은 분배했습니다.

 

(창47:24)“추수의 오분의 일을 바로에게 상납하고 오분의 사는 너희가 취하여 전지의 종자도 삼고 너희의 양식도 삼고 너희 집 사람과 어린 아이의 양식도 삼으라.”라고 했다. 즉 요셉은 지주와 소작인에 대한 분배를 20대 80으로 정했습니다. 이것을 당시 백성들은 크게 만족했습니다.

 

랍비, 삼손 라파엘 허쉬는 요셉이 바로와 백성의 몫을 20대 80으로 배분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석했습니다. “땅의 주인인 바로에게 소작인의 몫을, 백성들에게는 지주의 몫을 분배한 것은 백성들을 노예로 만들지 않고 소작인이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1524년 독일 농민전쟁이나, 1789년 프랑스 혁명은 소유와 분배의 불균형에서 비롯됐지만, 결국 지주와 소작인, 주인과 종의 관계의 부조리에서 일어난 혁명이었습니다. 당시 프랑스 인구의 2퍼센트 귀족과 성직자들이 전체 토지의 40퍼센트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백성들이 “당신들은 이 나라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다.”라는 사실을 분배를 통해서 알게 했습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일을 할 때에 직장의 종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릅니다.

 

일본 홋카이도 대학 사카가미 교수진이 개미에 대하여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개미는 보통 하루 6시간 일하지만, 그 중 80퍼센트는 하루 종일 빈둥대면서 놀거나, 그저 왔다 갔다 할 뿐이며, 일하는 개미는 겨우 20퍼센트에 불과하다.”라고 했습니다. 결국 20 퍼센트 개미가 나머지 80퍼센트를 먹여 살린다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교수진이 개미를 통해 발견한 것은 “나태한 80퍼센트는 모두 제거해야 될 대상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야 할 공동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다윗이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삼하9:7)“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을지니라.”고 한 것은 단순히 “같이 밥 먹자”란 말이 아니라, “너를 나의 가족과 같이 모든 것을 함께 나누겠다.”란 뜻입니다.

 

다윗이 전리품을 공평하게 나눈 것은 “잃었다 찾은 기쁨을 나누기 위함이었습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이삭을 흘려 줍도록 한 것은 양식 얼마를 도와준 것이 아니라, 수확의 기쁨을 함께 나눈 것입니다. 요셉이 백성들에게 80%의 수확물을 나누어 준 것은, 그들이 종이 아니라, 주인이란 사실을 알려준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들이 많이 있습니다.

은혜를 나누다는 것은 물질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 은혜를 나눔을 통해 회복과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혜를 나눔으로 공동체가 변화되도록 힘쓰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