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5일 주일 설교 원고 / 우리는 이민자가 아니라 순례자이다.

성경 : 히브리서 11 : 13 – 16

제목 : 우리는 이민자가 아니라 순례자이다.

  1. 11.15(추수 감사주일)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오늘은 우리 앞서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았던 믿음의 조상들을 통해, 우리 또한 외국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우리는 이민자가 아니고, 순례자이다.

성경역사는 이민의 역사입니다. 오늘 본문 (13절)“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을 뜻합니다. 이 사실을 창세기에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창12:4-5)“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모든 소유와 사람들을 이끌고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75살 된 노인이 온 가족을 데리고 정처 없이 고향을 나섰을 때 얼마나 두렵고 막막했겠습니까?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풍요하고 안정된 환경을 포기하였습니다. (히11:8)“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외국에 사는 사람은 이 말 뜻을 더 깊이 알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미국과 남미는 거의 같은 시기에 개척되었지만, 이주의 목적과 동기는 서로 달랐습니다. 미국으로 간 사람들은 순수한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그곳을 간 반면, 남미로 이민을 간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갔습니다.

우리말 사전에 이민자란 “어떤 국민이 본국을 떠나 타국으로 이주한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영어로는 “Migrant”라고 하는데, 그 뜻은 “이민자, 철새”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순례자와 이민자는 그 목적과 동기가 다르기 때문에 신앙의 자유를 찾아간 북 아메리카로 간 자를 이민자라고 부르지 않고, 순례자라 부르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벧전1:1)에서 “흩어진 나그네”라고 했습니다. 헬라어로 “디아스포라”라고 했는데, “디아스포라”란 “씨앗을 흩어서 뿌리다.”란 뜻으로, 하나님이 핍박이란 바람을 통해 여러 사람들을 흩어지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지금 외국에 살지만 “나는 흩어진 복음의 씨앗이구나!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심으셨구나!”라고 목적과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철새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철새가 아닌 순례자로, “복음의 씨앗”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1. 순례자는 도전과 모험을 감수해야 한다.

순례자의 정신은 청교도들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1620년 9월16일 영국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180톤 되는 “메이플라워 호”를 구입한 후 총 102명이 멀고도 긴 5,440Km나 되는 거리를 항해를 시작한 지 63일 만에 같은 해 11월 21일 신대륙에 도착했습니다.

메이플라워 호에 탄 사람 중 국회의원도 있었고, 상원의원과 장군도 있었고, 사업가, 의사, 교수들도 많았습니다. 그들은 기득권자들이었지만, 오직 한 가지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 순례자의 길을 택하였습니다. 처음 출발한 사람은 모두 102명이었지만, 불행하게도 도중에 44명이나 죽었고 나머지 58명만 신대륙에 도착하였습니다.

다행이 육지에 도착했지만 극심한 추위와 질병, 굶주림으로 또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추운 겨울동안 움막에서 추위를 견디며, 봄이 왔을 때 잡초로 우거진 땅을 손이 부르트도록 개간하여 농사하여 그 해 가을에 정성어린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때 “포세이돈” 목사님은 시편 126편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라는 말씀을 읽고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102명 중에 죽은 자들이여! 이 미국 땅에 위대한 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저희들이 죽더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그 후 메이플라워 호가 신대륙에 도착한 지 310년이 지난, 1931년에 그들의 후손들은 102명의 선조들의 신앙을 기념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102층 엠파이어스테이트(Empire State)빌딩을 뉴욕에 세웠습니다. 그때 그들은 다시 한번 시편 126편을 읽고, 전 미국이 “우리 조상들의 신앙을 본받자!”라고 하면서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인물은 약 3만 명이 넘습니다. 그런데 성경이나 세계 역사에서 공통된 점은 대부분의 인물들은 고향이나 한 곳에 정착하며 살지 않고, 나그네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사람은 고향을 떠나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모와 형제, 일가친척과 함께 고향에서 살면 도전이나 모험이 적습니다. 노력을 경주하지 않아도 살 수 있고, 자안주하기 쉽습니다. 저도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면, 지금 농사를 짓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지금 우리는 누구보다 외국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지만, 이것은 우리의 그릇이 커지는 과정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을 마냥 붙잡아 함께 살자고 하기보다, 독립할 수 있도록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스페인에 온 것이 모험이기도 하지만, 기회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1. 이민자는 어떤 일도 부끄럽지 않게 여기는 직업정신이 필요하다.

요셉의 초청으로 이민 온 야곱의 70여명 가족들은 낯선 땅에서 당시 애굽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목축업”을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목축업은 오늘날 “3D직업” 이었습니다. (창46:34)“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이 여기나니”그러니까 야곱의 가족들은 “3D직종”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예외가 아닙니다. 초기 미국이나 일본으로 이민 간 사람들은 그들이 싫어하는 청소부, 세탁소 등, 3D 업종에 종사하므로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한국인들이 독일과 유럽에 진출할 때도 자국인이 싫어하는 광부, 간호사, 병아리 간별사의 일을 통해 정착했습니다.

한국의 이민 역사가 120년밖에 되지 않지만, 현재 해외 흩어진 한인은 약 7백만 명이나 됩니다. 짧은 기간에 많은 사람이 외국에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3D직종을 비롯, 어떤 직업도 가리지 않고, 일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이민의 역사가 수천 년 계속 되어 왔지만, 지금도 이 원칙은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남의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정착할 수 있는 방법은 자국민이 해 낼 수 없고, 손닿을 수 없는 전문 직업을 선택하는 것과 어떤 직업도 천하게 생각하지 않고 감당해 내는 직업관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세상에서 나그네이지만, 영적인 나그네로, 이중적인 나그네들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바람이 부는 곳으로 옮겨 다니는 바람꽃이나, 철새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심은 “복음의 씨앗들”입니다.

우리는 나그네이기에 때로 고달픔으로 눈물을 쏟을 때도 있지만, 오히려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나의 직업 또한 부끄러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 먼저 외국인과 나그네의 삶을 살았던 믿음의 조상들과 같이 “본향을 사모하는 나그네의 삶”을 잘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