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마태복음 1 : 1 – 11
제목 : 이해할 수 없는 아브라함과 다윗과 그리스도의 족보
- 10.18
현재 한국에는 274개의 성씨가 있으며 국립박물관에는 13,000권의 족보가 소장되어 있다 합니다. 옛날에는 족보를 가문의 보물로 여겼고, 목숨보다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한국에 “TV 진품명품” 이란 프로그램이 있는데, 어떤 사람이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족보”를 감정한 결과 그 문서가 “노비문서”로 밝혀졌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흠이 없는 가문을 찾기가 힘듭니다.
저는 김영 김씨, 김시흥 할아버지의 28대 손으로, 시흥할아버지는 신라
제 56대 마지막(927-935) 경순왕의 11대 손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신라 경순왕의 39대 손인 셈입니다. 경순왕은 고려 태조 왕건에게 항복함으로 신라의 마지막 왕이 되었습니다. 저의 조상들이 수많은 과오를 갖고 있었겠지만, 크게는 한 나라를 넘겨주고 지키지 못한 불명예를 가진 집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르주티스롱”박사가 지은 “가족의 비밀”이란 책에서 “가족의 비밀은 개인의 정체성을 지탱해 주는 버팀목인 반면, 자신의 삶을 옥죄는 가장 고약한 것이 된다.”라고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개인과 가정의 족보 가운데 출생과 성장과정, 이혼과 재혼, 입양, 신체적인 장애 등 가족의 아픈 역사를 가급적 숨기고 싶어 합니다. “티스롱”박사는 “비밀을 숨기는 것이 훨씬 더 해로운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숨겨두기보다 정면으로 마주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마태는 오늘 본문에서 그토록 존경 받고 있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족보의 비밀을 가감 없이 폭로하고 있습니다. “너무 심했다.” 싶을 정도로, 너무 수치스럽고, 부끄러워 정말 감추고 싶을 뿐 아니라,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족보입니다. 오늘은 아브라함과 다윗, 그리스도의 족보가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고 있는지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도록 생각하겠습니다.
- 불륜으로 얼룩진 아브라함과 다윗의 족보
신약 성경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의 계보라”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혈통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까지의 족보를 42대로, 족보가운데는 14명의 왕들을 비롯, 보통 사람, 천민, 의인과 악인, 유대인과 이방인, 특히 다말과, 라합, 룻과 밧세바, 마리아, 5명의 여자도 함께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말이 누구입니까? 시아버지와 불륜 관계로 “베레스와 세라”두 아들을 낳았고, 라합은 기생이었고, 밧세바는 다윗과 불륜의 관계였고, 그리고 룻은 재혼한 여자였습니다.
다른 것도 그렇지만, 특히 빼고 싶은 사람은 우리아의 아내(6절)입니다. 차라리 밧세바라는 이름을 썼다면 덜 창피할지 모릅니다. “우리아의 아내”란 “우리 아버지가 옆집 아줌마에게서 나를 낳았다.”란 뜻입니다. 부끄러움을 감추기는커녕 고의로 폭로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아브라함과 다윗과 예수그리스도의 족보는, 불륜과 간음으로 가득 차, 추악하고 수치스러운 족보입니다.
왜 성경은 수치스럽고 낯 뜨거운 일들을 빼놓지 않고, 오히려 일일이 기록했는지 이해가 안 될 때가 있습니다. 일반 종교는, 대개 수치스러운 과거와 흠이 된다고 판단되는 과오와 실수들을 의도적으로 숨기거나 미화하는데, 성경은 오히려 스스로 수치를 드러내고 있습니까? 차마 낯 뜨거워 공개하기조차 부끄러운 이런 족보를 공개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태복음은 마태가 유대인들을 위해 썼습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다윗이 자신들의 조상이라는 사실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기고 교만하였는지 모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 된 것을 자랑하며, 이방인들을 무시하고, 짓밟았습니다. 마태는 조상과 족보를 자랑하는 유대인들을 향해 한마디로 “너희들이 이래도 조상과 가문을 자랑할 것이 있느냐?” 반문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자신의 가문이 양반이니, 귀족이니 하며 집안을 크게 자랑합니다. 또 한편에서는 자신의 집안의 비밀이 드러날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몇 대만 거슬러 올라가면 자랑할 수 없는 수치가 드러나는 것이 인간의 족보입니다. 마태는 아브라함의 족보를 통해 우리가 자랑스러워 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과거 부모가 이혼한 것 때문에, 지난날 한 때 자신이 방탕하고 불륜에 빠진 것 때문에, 이복형제가 있고, 집안이 복잡한 것 때문에 부끄러워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질까 두려워하여 형제가 서로 만나는 것조차 꺼리고 있습니까? 지난 과거에 우리 부모가 저지른 일이건, 형제나 자신이 저지른 일이건 그것이 오늘 우리의 삶을 제약할 수 없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마태가 수치스러운 족보를 감추지 않고 공개한 것은 그 어떤 사람도 부끄럽고, 수치스런 과거 때문에 주님 앞에 나오지 못하겠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모든 약점이나 감추고 싶은 이야기를 감추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완벽한 인물이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성경은 사람을 미화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아브라함과 다윗과 예수님 가문의 추한 모습조차 그대로 공개함으로 세상 모든 사람들이 기죽지 않고 나아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사55:7)“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 죽음으로 얼룩진 아브라함과 다윗의 족보
창세기 5 장을 흔히 “10대 고조 할아버지의 역사”라고 불리는 장입니다. 아담 이후에 가장 오래 산 할아버지들을 기록한 장입니다. 에녹은 365년을 살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하였고, 나머지는 모두 900세 이상 살았습니다. 므두셀라는 969세로,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살았습니다.
그런데 가장 오래 산 사람들의 역사를 성경은 아주 간단하게 적고 있습니다. “몇 살에 누구를 낳고, 몇 년을 살다가 죽었더라.”입니다. 900년을 산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겨우 세 글자의 역사 “낳고 살고 죽었더라.”의 역사일 뿐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족보가 보여주는 교훈은 “모든 인간은 죽는다.”라는 사실을 선포한 것입니다. 죽음은 성경이 가르치는 중요한 주제이지만, 사람들은 “죽음”이란 말을 가장 듣기 싫어합니다.
“영원을 준비하라”는 책을 쓴 “토레이”목사님은 설교를 잘 하시는 분으로 그가 설교하는 곳이면 자리가 꽉꽉 찰 정도입니다. 어느 날 “토레이” 목사님이 초청을 받아 설교를 하게 되었는데 연일 자리가 꽉 찼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내일 저녁은 죽음과 지옥에 관한 설교를 하겠습니다.”라고 했더니 그 다음날 절반밖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죽음과 천국과 지옥에 관한 이야기를 영화나 문학, 전설 같은 이야기를 통해서 많이 듣고 배웁니다. 특히 한국에는 귀신 이야기가 참으로 많습니다. 귀신이야기가 많다는 것은 원한이 많다는 뜻입니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안타깝게 죽은 사람” “사랑하고 싶은데 사랑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 이런 안타까운 사정을 귀신이란 이름으로 대리 만족케 하는 것입니다.
“시나이 린조의 눈”이라는 희곡이 있습니다. 시나이는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를 두고, 질병으로 젊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천국에서 세상에 두고 온 아내와 자식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였습니다. 그는 한번만이라도 아내와 자녀를 보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몸은 두고 눈만 갔다 오라고 허락을 했습니다. 부푼 마음으로 세상에 있는 자기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의 아내는 바람이 나서, 어린 자식들을 내버리고, 자기 친구와 눈이 맞아 재미있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화가 나 그를 죽이고 싶었지만, 때릴 손과 말할 입이 없어 안타깝기만 하였습니다. 차라리 보지 않았으면 좋을 뻔 하였는데 이미 다 보았기에 괴롭기만 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이 세상을 원망하면서 다시 저 세상으로 되돌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꿈이나 환상으로 천국과 지옥을 보았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천국의 참 모습이 아닙니다.
성경은 죽음에 대해 몇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혼자 죽는다. 사람들이 한날한시에 죽자 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함께 죽을 수 없습니다. 둘째, 대신 죽을 수 없다. 자식의 죽음마저 대신할 수 없습니다. 셋째, 죽음의 시기를 알 수 없다. 언제 어느 때 죽음이 올지 아무도 모릅니다.
넷째,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전5:15)“저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 나온 데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 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다섯째, 죽음 후 반드시 심판이 있다. (히9:27)“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후에 심판이 있으리라” 여섯째, 성도의 죽음이 복됩니다. (시116:15)“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그리스도 안에서 복된 죽음을 준비하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회복된 족보
아담과 아브라함, 다윗의 족보는 불륜과 참담한 죽음으로 얼룩진 족보였습니다. 아담과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태어나는 순간 누구도 죄인이 될 수밖에 없으며, 죽음 또한 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롬5:12)“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바울은 아담과 아브라함의 족보로는 어떤 희망도 없다는 사실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불륜의 족보를 회복하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족보를 바꾸는 길밖에 없습니다. 아담과 아브라함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까? (엡1:5)“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의 족보가 완전히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족보와 달리 마태는 “낳고”라고 했지만, “죽고”란 말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낳고 란 말 속에 죽고란 의미가 포함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마태는 “죽고”란 말을 기록하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1절)“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의 계보라” 그리고 (마1:21)“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마태는 예수그리스도께서 불윤과 수치로 얼룩진 계보를 회복하고 새롭게 하기 위해 우리에게 오셨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마저 믿음으로 누추한 족보가 회복되어 새로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갈3:6-7)“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줄 알지어다.”
예수그리스는 아담 안에서 비뚤어지고 추악한 족보를 회복해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것이 다말, 기생 라합, 밧세바는 불륜의 죄를 짓고도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 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성경은 불륜과 부정을 결코 합리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회복되고, 새롭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기던 아브라함과 다윗의 족보마저도 불윤과 수치로 얼룩진 족보입니다. 또한 죽음으로 얼룩진 족보입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께서 수치와 부끄러운 족보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또한 예수그리스도께서 저와 여러분들의 수치와 허물을 회복해 주셨습니다.
(고후5:17)“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 피조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