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7일 주일 설교 원고 /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이…

성경 : 잠언 27 : 17

제목 :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이…

  1. 9.27

원소기호 Au, 원자번호 79, 녹는점 1064℃, 그리고 비중 19.3인 이것을 사람들은 황금이라 부릅니다. 세상에 모를 것이 처녀의 마음이라 하지만, 세상에 금만큼 알기 힘든 것도 드물 것입니다. 별 쓰임새도 없으면서 영롱한 광채를 지닌 금은 오랜 세월동안 숱한 영혼을 사로잡아 왔습니다.

사람은 말할 것도 없지만, 하나님께서도 금을 성물로 구별하였습니다. 성경에 금에 대한 언급이 무려 1004번씩이나 나오는데, 이는 성경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다윗의 이름보다 훨씬 많습니다. 이토록 금이 고귀한 이유는, 변하지 않는 이유 때문인데, 4,500년 전 이집트의 미라 속에서 나온 금을 지금도 사용하고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이런 변치 않는 속성 때문에 성경에서도 금을 사랑과 약속의 증표로 사용해왔습니다.

그런데, 금이 4500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이유는 2800도 이상 되는 용광로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재련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금은 재련이 만들어낸 보물입니다.

오늘 성경은 재련의 소중함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오늘 본문의 말씀은 교회당 입구에 걸려 있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제가 평소에 묵상하고 있는 이 말씀을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은 시련을 통해서 우리 믿음을 순수하게 만드신다.

테니슨의 시 “용광로”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쇠붙이를 벌겋게 용광로 속에 달구어서 원하는 형태로 두들겨 찬물에 담급니다. 원하는 형태로 만들어지지 않았을 때는 다시 달구고, 두들겨 원하는 형태로 만들어 냅니다. 하나님께서도 사용하실 수 있을 때까지 고난을 통해 연단하십니다.”

(벧전 1:7)“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 “믿음의 시련”이란 “고난, 시험”을 뜻합니다. 철이 용광로 속에 여러 번 들어갔다 나올 때 순수한 철이 되듯, 우리 믿음도 시련 가운데서 순수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욥보다 많은 시련을 당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가 시련을 당하고 난 다음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욥7:18)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 (욥23:10)“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의 믿음을 보면 잡다한 것들이 많이 섞여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에도 우상이 오래 동안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이방신의 제단과 우상 숭배가 그림자처럼 그들을 따라 다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아무런 값없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지만, 세상가운데 살면서 점차적으로 본래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세상 사람들과 비슷하게 살아 갈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세상 사람들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러 가지 시련과 고통을 주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하시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시련이라는 용광로를 통해 우리 속에 있는 불순물을 기꺼이 제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한 시련은 결코 낭비적인 것이 아닌 값진 것임을 알아야 하며, 또한 고난 속에서 힘을 잃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힘을 얻게 되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한국이 유럽에 처음 소개된 것은 1653년 네덜란드 사람, 하멜의 표류기에서 언급되었습니다. 하멜은 “조선 사람은 거짓말 잘하고 도적질 잘 한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우리가 약해진 것은 우리가 스스로 부정직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한국이 해방 후 지금 한국의 경제 수준은 세계 13위며, 기술력은 11위가 되었습니다. 대학 진학 율은 52%(미국53%, 일본42%, 중국7%), 문맹률이 세계에서 제일 적은 나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정직성은 세계 50등으로 나와 있습니다. 기독교인의 숫자가 일본이 0.7%, 한국은 20% 이지만 법정에서 무고죄가 일본보다 2352배 높고, 위정 죄가 462배가 높은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 땅에 의를 세우기 위해 두 가지 제도를 주셨습니다. 재판권과 제사의 제도입니다. 재판권을 통해서 이 세상의 공의와 질서를 바로 세우도록 했고, 제사장을 통해 영적인 질서를 세우도록 했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잣대를 이 두 가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자녀들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유산은 “순수한 믿음”입니다. “신뢰와 정직”은 외국에 사는 우리에게 생명과 같은 것이며, 자산이란 사실을 꼭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은 사람과의 부딪침을 통하여 강하게 하신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이란 “철과 철을 마찰 시킨다”란 뜻입니다. 집에서 사용하는 부엌칼이 무뎌졌을 때, 금강석이나, 철과 마찰을 시켜서 갈면 날카롭게 됩니다. 부딪힘이나 충돌이 없으면 날카롭게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물리적인 현상입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적용할 때 마찰은 대인관계 속에서 빚어지는 부딪힘이나 갈등, 나아가 압박 등을 말합니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크고 작은 부딪힘과 갈등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천사들이 모여 사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갈등은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게 있어 왔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삶의 현장에서, 직장과 대인관계에서 많은 갈등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철이 철을 연마하듯,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을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연단하십니다. 하나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참으로 싫어하는 방법으로 연단하시고, 훈련하십니다. 지난 날 우리들이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면, 이 사실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대장장이는 철을 두들겨서 강하고 날카롭게 만들어냅니다. 하나님께서도 사람과의 부딪침을 통해서 자기 자녀들이 강해지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론 사람과의 부딪힘이 싫어 외골수가 되거나 사람을 기피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옳은 태도가 아닙니다. 사람을 통해서 모난 부분을 제거하시고 성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성도의 교제는 중요합니다.

성도여러분! 우리 가족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가족끼리도 한집에서 살다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부대끼고 힘들고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어릴 때 자녀들은 먹는 것, 입는 것, 장난감, 서로 네 것, 내 것하며 싸우기도 하고, 부모에게 야단도 맞으면서 자랍니다.

우리 자녀들이 가족끼리 부대끼며, 싸우다가 혼나기도 하면서 양보와 협력을 배우며 인격도 성숙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형제의 소중함을 배우게 됩니다. 나를 힘들게 한 사람도 결국에는 나를 사람으로 만들어가고 나를 지혜롭게 만들어주는 고마운 사람으로 여겨지게 됩니다.

가정을 떠나 학교나 직장에 들어가게 되면 공동체규모가 더 커지게 됩니다.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나와 스타일이나 취향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기도 하지만, 정반대의 사람들, 아주 고약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 가정에서 한 번도 듣기 싫은 소리를 듣지 않고 자랐거나, 제 하고 싶은 대로 자랐을 때, 사회생활을 적응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비록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여전히 옛사람이 남아 있어 때로 남에게 상처가 되는 말과 행동을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서로 부대끼며, 때로 부딪히는 것을 통해 성숙하고, 강하게 되는 과정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모여 있는 교회를 일하는 곳으로, 항해하는 곳으로, 경기하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항해하는 선원이 언짢은 말 한마디 들었다고 해서 배에서 내려 올 수 있겠으며, 경기하는 선수가 비바람 때문에 경기를 포기할 수 없듯, 우리들 또한 사소한 부딪힘과 마찰로, 믿음의 경주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교회는 약함을 강하게 하는 훈련장

임을 기억하고, 교회를 통하여 더욱 강하고 담대함을 소유할 수 있길 바랍니다.

  1. 하나님은 사람과의 부딪침을 통하여 변화하게 하신다.

철이 용광로 속에 들어갔다 나온 후, 철과 철이 부딪힐 때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 되어 나옵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그릇들이나, 용품들 모두 이런 과정을 통해서 변화된 것들입니다. 사람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성경은 사람과의 부딪힘을 통하여 변화된 사람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그 누구도 스스로, 혼자서, 온실과 같은 곳에서 변화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 야곱은 사람과의 부딪힘과 마찰을 통하여 변화된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야곱의 생애를 크게 집념의 단계와 순복의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집념의 단계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성취하고자 했던 시기를 말하며, 순복의 단계는 변화된 모습의 삶을 말합니다.

야곱은 아주 타산적이고, 주도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가 배가 고픈 때를 알고 팥죽을 끓여 놓고 기다렸다가 장자의 명분과 바꾸었습니다. 또한 야곱은 목적을 성취하고자 눈 먼 아버지에게 염소를 사냥한 고기라고 속였고, 염소 털로 변장하여 에서라고 속였습니다. 닭 잡아먹고 오리발을 내 미는 격이었습니다. 이러한 야곱에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외삼촌 라반을 통해 시작되었습니다. 라반은 야곱을 무려 10차례나 속였습니다. (창31:41)야곱이 그의 외삼촌에게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었습니까?”고 했는데, 이 말은 교묘한 방법으로 야곱의 품삯을 열 번이나 떼어먹었다는 뜻입니다. 우리말에 “기는 사람 위에 나는 사람이 있다.”는 말과 같이 라반은 야곱보다 속임수에 있어 한 수 위였습니다.

하나님이 왜 야곱을 사기꾼인 라반 밑에서 일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외삼촌을 통해서 자신의 과거를 보도록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라반을 거울로 비춰준 것입니다. 하나님은 남을 속이고 거짓말하는 사람을 고치기 위해서 착한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보다 훨씬 더 악하고 속임수가 높은 사람을 붙여 깨닫도록 하십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이 때로 우리에게도 라반과 같은 사람을 붙여 두시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라반을 통해 야곱이 변화되기를 원하셨던 것처럼 우리 또한 변화되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사람들은 라반과 같은 사람과 더불어 싸우려고 합니다. “당신이 이럴 수 있습니까?”라고 따지고, 원망합니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라반과 싸우면 죽을 때까지 라반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변할 때 라반이 사라지게 됩니다.

“젊은 여자에게 명품 가방이라면, 아줌마에게는 명품 접시다.”란 말이 있습니다. 현재 세계 도자기 시장을 호령하고 있는 “웨지우드(본차이나), 로얄 코펜하겐(블루 플루티드), 그리고 독일의 마이센(블루 어니언)이 대표주자들입니다.

진흙과 뼈 조각이, 전 세계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불가마 속에 들어갔다 나왔기 때문입니다.” 시련과 고난, 사람과의 부딪힘을 견뎌 내면, 우리도 순수하게, 강하게, 그리고 변하게 됩니다. 대인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부딪힘과 마찰을 잘 견디고 감당한 후에 욥과 같이 “정금같이” 나오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