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요한복음 3 : 1 – 7
제목 : 밤에 찾아 온 사람에게 주신 말씀(1)
- 9. 6
요 즘 “거듭난다.” 라는 말은 유행어처럼 많이 사용되는 것을 봅니다. “우리 교육계가 거듭나야 한다.”, “정치계가 거듭나야 한다.”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거듭나야 한다.”라는 말은 “좀 깨끗해야 한다.” “좀 본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지만, 성경이 말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오 늘 본문은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니고데모입니다. 주님은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네가 거듭나야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주님께서 밤에 찾아 온 니고데모에게 주신 말씀 “네가 거듭나야 한다.”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밤에 예수님을 찾아 온 니고데모는 어떤 사람입니까?
(1절)“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당시 바리새인은 성경은 물론, 종교적인 열심과 경건을 덕목으로 삼았던 자들입니다. “지도자”란 각 주에 보면 “산헤드린 공회원”이라 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원”은 헬 라어로 “쉬네드리온”이라 불렀으며, 이스라엘의 종교 최고 재판기관으로 죄인을 심문하였고, 공회원 수는 구약의 장로 수에 따라 70명이었고, 대제사장, 제사장과, 서기관, 장로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국회의원에 해당되는 직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산 헤드린 공회는 예수님을 심문하여 사형판결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로마총독인 빌라도가 예수님을 죄가 없다고 판결했지만, 산헤드린 공회의 결정을 바꿀 수 없었습니다. 초대교회 때는 교회와 사도들을 핍박하였고, 베드로와 요한 역시 투옥시켰고,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인 단체가 산헤드린 공회였습니다. 니고데모는 이런 끔찍한 산헤드린 공회 회원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는 이스라엘의 선생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선생은 한 마디로, “이스라엘의 정신적인 지주”를 뜻합니다. 대개 유대인들은 10가정만 있으면 회당을 만들었고, 랍비를 두었고, 부모는 랍비에게 자녀 교육을 전적으로 의탁했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투자입니다. 유대인들은 자녀 교육에 투자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투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서기 66년 이스라엘이 로마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립전쟁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4년 만에 패하고 말았습니다. 패전의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유대인 700만 명이 죽임을 당했고, 10만 이상이 노예가 되었습니다. 당시 “요나단 벤 작칼”이란 랍비는 자기 민족이 몰살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고민 끝에 “베스파시아” 당시 로마 사령관을 찾아갔습니다.
그는 사령관에게 무릎을 꿇고 “우리 1세대가 죽는 것은 괜찮은데, 나라의 미래를 위해 토라 학교와 어린아이들만은 살려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습니다. 놀랍게도 사령관은 랍비의 요구를 들어주었습니다. 죽음에서 살아난 랍비는 몇 안 되는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그 때 “요나단 벤 작칼”은 “하나님이 없는 한 우리에게 미래도 희망도 없다.”라고 하며 신앙교육을 강조하였습니다.
그 의 가르침은 지금껏 유대교육의 근간이 되었고, 그 전통이 2000년 동안 지속되어 온 것입니다. 한 국가를 2000년 동안 지탱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영적인 안목을 가진 한 무명 랍비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고전12:28-29절)“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 참으로 소중한 은사입니다. 예수님도 사람들에게 종종 랍비라 칭함을 받았지만, 예수님 자신도 랍비라고 하셨습니다. (요13:14)“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우리 교회의 미래도 2세들을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딤후1:5)“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모세의 신앙 또한 어머니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참된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큰 과제는 유아부, 초등부, 중, 고등부를 믿음 안에서 바로 가르치는 일입니다. 현재 교사가 부족한 상태입니다. 교사로 지원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주님은 밤에 찾아 온 니고데모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성경은 니고데모가 왜 밤에 예수님께 찾아 왔는지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2절)니고데모는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라고만 말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3절)“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말씀하셨습니다. 니고데모는 “나는 이라고 말하지 않고, 우리가…”라고 했습니까? 니고데모는 거듭남에 대하여 직접 묻고 싶었지만, 유대인의 공회원이자 선생이란 체면 때문에 제대로 묻지 못한 것입니다.
지 금도 초등학생이나 초신자 경우에 무엇이든지 쉽게 물어 볼 수 있지만, 예수 믿은 지 오래 되었거나, 직분을 받았거나, 남을 가르치면서 질문하는 것이 쉽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니고데모가 그러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니고데모가 왜 밤에 찾아와 “동문서답” 같은 말을 하였지만, 니고데모가 알고 싶은 “거듭남”에 대하여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비 록 니고데모는 사람들이 부끄러워 낮이 아닌 밤에 예수님을 찾아 왔지만, 잘 이해되지 않는 진리를 알고 싶어, 예수님께 나아 온 것은 참으로 용기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가장 안 좋은 것은 “잘 모르면서 생각만하고 그냥 덮어 두는 것”입니다. 니고데모의 용기가 우리에게도 요구됩니다.
주님은 니고데모가 알고 싶어 했던 거듭남에 대해 답해 주었습니다. (3절)“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7절)“네가 거듭나야 하겠다.” 아주 강조형입니다. “거듭남”이란 생각과 의식이 좀 바뀌는 정도가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말하는 “거듭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먼저 희랍어에서 “거듭남”이란 단어는 “다시 태어나다.”“두 번째 태어나다.”,새롭게 태어나다.”라는 뜻입니다. 주님은 계속해서 니고데모에게 어떻게 “거듭나는 것”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5절)“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절)“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여 기 “물”이란 사람이 부모의 태중에 있다가 양수에서 태어난 것을 말합니다. 또한 성령으로 난다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난다는 뜻입니다. 처음 우리는 부모로부터 육신의 생명을 받았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았습니까?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생명을 받아 두 번째 태어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일5:1)“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자를 사랑하느니라.” 육신의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여러 과정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영적인 생명을 받아 출생하는 과정은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요1: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자들이니라.”
하나님께로 태어나는 것은 사람이 이해되는 방법으로 출생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할 때에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누구든지 거듭나야 한다.”라는 사실입니다.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거듭났습니까? 어떻게 거듭났습니까?
(요1: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 말씀을 붙잡고, 내가 거듭난 사실을 믿고 확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밤에 찾아 온 니고데모는 어떻게 변화 되었습니까?
전에는 숨어 있는 제자였지만, 이제 달라졌습니다. (요7:50,51)“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 (요19:39)“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 쯤 가지고 온지라”
그 러나 니고데모는 훗날 자신의 모습을 당당하게 더러 냈습니다. 드러내는 정도가 아니라, 율법을 잘못 적용하는 대 제사장과 바리새인을 꾸짖기까지 하였으며, 예수님의 제자들조차 두려워 모두 도망가고 없을 때,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다 장사까지 하였습니다.
“거듭남의 확신”, “하나님의 자녀 됨의 확신”은 우리의 근본을 변화시키고 바꾸게 합니다. 중생 니고데모는 중생에 대한 확신이 없었을 때는 동료 공회원들의 눈치를 보았고, 공개적으로 예수님을 옹호하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중생에 대한 확신을 가진 이후 자신의 정체를 세상에 밝히 드러냈습니다. 다시 말해 숨어 있던 제자에서 정체를 드러낸 제자가 되었습니다.
성 도여러분! 우리가 믿음 생활하면서 주변을 의식하여, “내가 혹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을까?”, “왕따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때로 주변을 의식해서 그리스도인인 것을 숨길 수도 있고, 내가 교회 집사인 것도 숨길 수 있겠지만, “중생의 확신”, “내가 하나님께로 태어났다.”는 확신을 가질 때에 더 이상 자신을 숨길 수 없게 됩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 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마5:13,14) 하나님께로 태어난 자들은 세상에 노출되어 있고, 노출 될 수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숨어 있는 자가 아닌 하나님께로 태어난 자로 살아 살아야 합니다.
니고데모는 살인 단체와 같은 흉악한 산헤드린 공회의 일원이었지만, 그들과 뜻을 같이 하지 않은 “존귀한 공회원”이었습니다. 우리는 환경과 주변이 불의한 곳이라고 불평만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우리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곳은 바로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주 님께서 12제자들과 70인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세상은 비록 악하고, 유혹이 많지만 도피하거나 외면할 곳이 아니라 우리의 일터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복음화 하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마치 “거대한 소금 덩어리”가 되어 맛을 내기는커녕 너무 짜서 사용할 수 없게 된 느낌입니다.
주 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에 빛과, 세상에 소금”이 되라 하셨지, 교회 안에 “소금덩어리”로 살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소금 덩어리”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울러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일터는 세상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만합니다.
세 상에 있는 사람들, 세상에 존재하는 기관과 단체들, 세상에 존재하는 정치 문화와 예술 체육인들의 세계가 더럽고 타락했다고 기피할 것이 아니라,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그곳을 차지하고 정복해야 하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 젊은 학생들이, 우리 청년들이 세상 곳곳에 들어가서 그곳에서 주님을 타나내는 빛 되고,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우 리는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당당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자녀의 확신”, “거듭남의 확신”을 가지고 숨어 있는 제자가 아닌, 당당한 제자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