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6일 주일 설교 원고 / 종노릇 하지 말라.

성경 : 갈라디아서 4 : 1-9

제목 : 종노릇 하지 말라.                                                         2015. 7.26

우리가 사는 스페인은 A. D. 711년 우마이야 왕조에 속한 베르베르족과 아랍인들로 구성된 무어족 군대가 쳐 들어와 스페인 북부 지역을 제외하곤 대부분 지역을 정복하였습니다. 스페인은 약 750년간 이슬람 제국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스페인은 빼앗긴 땅을 되찾기 위해 750년 동안 몸부림치며, 실로 눈물겨운 역사를 반복해야만 했습니다.

스페인이 무어족과 맞서 싸웠던 전설적 영웅이 바로 엘 시드입니다. 엘시드는 우리나라의 이순신 장군과 같은 사람입니다. 스페인은 결국 1492년 마지막 그라나다를 정복하면서 이베리아반도에서 무슬림을 몰아내는 데 성공하여 비로소 독립하여 자유를 얻었습니다.

금년은 광복 70주년이자, 제 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이 되는 해이며, 그리고 나치 수용소였던 아우슈비츠 해방 7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입니다. 모든 인간은 자유를 갈망합니다. 바울 역시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자유의 소중함을 언급하면서 다시금 종이 되지 않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무엇에 종노릇 하지 않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겠습니다.

1. 세상 초등학문에 종노릇 하지 말라.

종이란 “노비나 노예”로 오직 주인의 명령에 의해 시키는 일을 하는 신분으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하위 신분계층을 말합니다. 오늘날에는 “종”이란 개념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럼에도 현대인들은 많은 것들에 의해 속박당해 종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본문, 바울도 이 사실을 인정하면서,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세상의 초보적인 사상과 원리에 종노릇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3절)“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하였더니“초등학문”이란 성경 밑줄에 주가 달려 있습니다. “고대의 우주관과 운명론 등”이라 해 놓았습니다. 오늘날로 “미신, 사주, 궁합, 토정비결, 운세 같은 것을 뜻합니다.

실제로 갈라디아 성도들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동시에 “날과 달과 절기와 해” 같은 원리에 얽매여져 있었습니다.(9-10절)“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노릇 하려 하느냐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저급한 원리와 사상에 빠져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산이나 바닷가를 찾아 떠오르는 해를 향해 절을 하며, 소원을 빕니다. 집이나 건물을 지을 때도 문을 내는 것도 마음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시집장가 가고, 이사하는 날짜도 택일을 합니다.

유럽인들 뿐 아니라, 한국인들까지 금요일과 특히, 13일의 금요일을 크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특히 배 사업을 하는 사람은 금요일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출항하지 않습니다. 또 출항할 때는 되지 머리를 놓고 고사를 지냅니다.

독일은 608년, 독일의 사도로 불리는 보니훼이스 선교사의 의해 처음 복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게르만인들은 한국처럼 나무나 바위 등 자연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중부 독일 한마을 사람들이 큰 고목을 섬겼는데, 고목나무가 마을을 보호해 준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곳에 온 보니훼이스 선교사는 마을 입구에 있는 고목나무가 복음전파에 큰 장애가 되어 고민 중에 있었는데, 어느 날 고목나무가 벼락을 맞아 쓰러져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하루 빨리 나무를 치우고 싶었지만,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 때 선교사님은 마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하고, 마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도끼로 고목나무를 찍었습니다. 한참 고목나무를 찍자 박쥐 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것을 본 마을 사람들은 고목이 신이 아닌 것을 알았고, 그 후 마을 사람들이 복음을 받게 되었고, 20년 동안 10만 명이 세례를 받았다는 교회사의 기록이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세상 초등학문이 들어와서 주인노릇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인터넷에서 “오늘의 운세를 봅니까?” 심심풀이로 본 운세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게 됩니다. 결혼할 때 사주 궁합을 봅니까? 아직도 환생을 믿습니까? 바울은 “세상의 미신은 약하고 천박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관습과 세상의 원리, 세상의 풍조에 얽매여 종노릇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2. 율법에 종노릇 하지 말라.

살기 좋은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 차이는 법이 얼마나 바로 시행되고 있느냐 하는 차이입니다. 오늘날 이슬람국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님들의 가장 큰 두려움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그나마 편하게 살 수 있는 것도 법의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4-5)“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 율법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가 율법 아래 있다는 것을 무엇을 뜻합니까? “우리가 범죄 하여 죄인이 되었다.”는 것을 뜻입니다. 반면 주님이 율법 아래 나셨다는 것은 “범죄 한 인간을 구하기 위해 죄인처럼 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저 사람은 법 없어도 살 사람이다.” 말을 하는데, “법을 위배 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범죄 하지 않으면, 모든 법들이 나에게 적용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롬3:10)“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말씀같이 세상 모든 사람은 “율법과 상관이 없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십계명만 적용해도 허물이 곧바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기에 율법은 우리를 향해 끊임없이 “너는 죄인이야!” “너는 이중인격자야!” 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실제 모습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율법 아래 태어나심으로 율법 아래 얽매여 있는 우리를 속량해 주신 것입니다.

 

(롬6:8)“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중을 믿노니” 세상에서 아무리 크고 나쁜 죄를 지었다고 해도 그 사람이 죽으면, 법은 더 이상 정죄하지 못합니다. 법은 죽음 앞에 아무 효력을 발생하지 못합니다.

율법이 매일 우리를 향해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외치고 있지만 더 이상 효력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 죽었기에 율법의 속박에서 자유로운 몸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 율법이 우리를 정죄합니까? 언제 율법의 종이 됩니까? “내 힘과 능력으로 할 수 있다.”, “내가 살아 있다.” 라고 하는 순간 율법아래 놓이게 됩니다. 율법은 곧장 우리를 향해 “너는 죄인이야! 너는 나의 종이야”라고 선언하게 됩니다.

교만과 불순종, 자기 자랑이 무서운 죄가 됩니까? 율법의 종이 되어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기 때문입니다. “너는 왜 항상 그 모양이야!”, “당신이 한 것이 뭐 있어!”, “네가 잘하는 게 뭐 있어!” 라고 내가 살아 있을 때, 내가 죽었다는 것을 잊는 순간, 율법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롬7:5-6)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우리가 죽을 때에만 율법에서 벗어 날 수고 자유 할 수 있습니다.

나의 자아가 죽으면, 교만도, 원망도, 좌절할 것도 없습니다. 율법의 지배에서, 율법의 정죄에서 해방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함께 못 박혔다.”라는 사실을 붙잡고 살 때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고전2:2)“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한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죽은 자로 살겠습니까? 산자로 살겠습니까? 산자로 자로 사는 순간 “그 많은 율법들이 우리를 정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죽은 자로 살면 율법에서 자유하게 됩니다. 죽은 자로 사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3. 죄에게 노릇 하지 말라.

죄가 무엇입니까? (롬7:23)“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이것은 노예를 끌고 가는 모습입니다. 죄는 단순히 추상명사가 아니라 큰 힘이며, 권세입니다. 사슬에 끌려가는 노예의 모습, 그게 바로 죄 아래 있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다윗은 범죄 한 후 (시32:3)“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사람이 가장 큰 고통을 표현할 때 “뼈가 아프다.”라고 말합니다. “골수에 사무치다.)(잊을 수 없다.) “뼈 빠지게 일하다.”(고통스럽게 일하다.) “뼈에 새기다.”(결코 잊지 않겠다.)죄는 이토록 사람을 아프게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예수를 믿고 있지만 여전히 죄를 짓습니다. 죄로부터 해방이 되었으나 여전히 죄를 짓습니다. 바울 같은 위대한 사도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롬7:23-24)“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구원파에서는 이런 상태를 아직 완전한 구원을 받지 못했다고 가르칩니다. 바울이 그토록 괴로워했던 것이 아직 완전한 구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옛 생활의 습관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었지만 죄에 대한 욕구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롬8:1-2)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이보다 놀라운 해방은 없습니다. 우리가 여전히 죄를 짓고 있지만, 죄에 대하여 해방되었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마음대로 죄어 지어도 괜찮다는 뜻입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죄에서 해방 되었다는 것은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죄를 짓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힘을 다하여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죄에 대하여 용서 받고 해방된 자는 죄를 짓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죄를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주님을 또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죄는 전염되고 확대되는 속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잘못 드린 가인의 죄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동생을 죽이는 데까지 확대 되었으며, 다윗의 죄 또한 게으름에서 간음죄, 다시금 살인죄로 이어졌습니다. 죄는 점점 수렁이로 빠져 들게 합니다. 그러므로 작은 죄라도 두려워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죄를 짓는 자 마다 죄의 종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은 저와 여러분을 세상의 천박한 초등학문과 미신으로부터 자유하게 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율법의 종에서 자유하게 해 주셨고, 죄의 종에서 자유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종으로 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후사로 유업을 받을 자로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후사와 유업을 받을 자로 사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