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5일 주일설교 원고 / 남보다 수고하였지만, 얻지 못한 것

성경 : 마가복음 10 : 17 – 22

제목 : 남보다 수고하였지만, 얻지 못한 것

2015. 7. 5(맥추 감사주일)

오늘 본문에 소개되고 있는 사람은 마태복음에는 “재물이 많은 부자청년”이라 했고, 누가복음에는 “관원” 마가복음에는 “재물이 많은 부자”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부와 명예, 젊음 이 세 가지를 동시에 갖기 힘든 것을 일찍 소유하여 빨리 출세한 사람이라 생각됩니다. 19절을 근거할 때, 그가 소유한 것들은 부정 축제나, 부당하게 얻은 것이 아닌 깨끗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관직 또한 뇌물을 주어 얻은 것도 아닌 자기 능력으로 이룬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의 나이 아직 젊지만 허랑방탕하지 않았고, 그의 삶도 어느 면으로 보나 모범적이었습니다. 또한 부모 공경한 아들이었고, 타인에 대해 거짓이나 피해를 주지 않았으며, 여자에 대해 깨끗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직 미혼이었습니다. 여자들이 볼 때도 훌륭한 신랑감으로 여겨집니다.

참으로 모자람 없는 사람처럼 보이며, 현대인, 특히 젊은이들에게 좋은 모델이 되기에도 충분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그가 얻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본문을 통해서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주님을 만났지만, 영생을 얻지 못했습니다.

부자 청년은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예수님에게 나오는 열심과 무릎까지 꿇는 겸손함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3장, 니고데모가 어렵게 예수님을 찾아 자신의 문제를 해결 받은 것과는 달리, 더 나쁜 상태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두 가지를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예수님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17절)“선한 선생님이여” 이 청년은 예수님을 “선생”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 예수님을 선생, 랍비로 알고 있었습니다. 처음 요한의 두 제자도 예수님을 “랍비”라고 했으며, (요1:49) 나다나엘도 처음 예수님을 “랍비”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메시야”라고 고백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질문하였을 때 베드로가 (마16:16)“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고백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이 청년을 예수님을 선생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메시아 됨을 고백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또한 영생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부자 청년은 (17절)“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질문합니다. 청년은 영생은 내가 선한 일을 행함으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청년은 지금껏 자기 노력으로 재물도 모았고, 사회적인 지위도 노력으로 얻었고, 율법도 지켰으니 구원도 내 힘으로 이룰 수 있다고 믿었는지 모릅니다.

세상종교들 가운데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심지어 유대교까지 선을 베풀고, 인간의 공로로 구원을 얻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영생은 어떻게 얻습니까? 우리는 유치원 때부터 배웠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당신은 구원을 받았느냐”는 물으면 확신이 없습니다. 구원파 같은 이단들이 바로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접근해 옵니다. 구원파에서는 내가 구원받은 날자와 시간을 모르면 구원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구원받은 날자와 시간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지만,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래 신앙생활을 해도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는 이유 중에 하나는 구원받는 것이 너무 쉽기 때문입니다. 구원받기 위해 내가 기도도 많이 못했고, 선한 일, 봉사 등 무엇을 한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자신이 없습니다. 이것은 구원의 기초를 감정에 두기 때문에 생긴 결과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엡2:8)“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구원은 믿음으로 얻습니다. 구원은 사람에게 난 것이 아닌,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행함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은 구원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값없이 받은 구원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부자 청년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재물이 많기 때문이 아니라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2. 계명은 지켰지만, 사랑을 잃어 버렸습니다.(20절)

부자 청년은(19절)“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여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예수님에게 (마19:20)“내가 아직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부자 청년은 많은 사람들이 지키기 힘든 것들을 잘 지켰습니다. 부모공경이 쉽습니까?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거짓 증거 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부자 청년은 모두 지켰습니다. 우리가 부자 청년의 부족한 것을 말하기 전에 그가 지킨 계명들에 대해 존중해야 합니다. 주님은 한 번도 계명을 소홀히 하라고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부자청년은 계명을 다 지켰다고 자부했지만, 사랑을 잃어 버렸습니다.

현대인들은 복잡한 것을 싫어합니다. 요즘은 갈수록 말이 짧아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저에게 이런 문자를 보내옵니다. “자소서” “자기소개서”를 “자소서”라고 합니다. “멘붕”이란 말을 한참 동안 몰랐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 검색해 보았습니다. “멘탈”은 “정신이 붕괴됐다.”는 뜻으로, “정신이 나갔다.”란 의미였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알아낸 단어가 있습니다. “나 요즘 누구랑 썸탄다.”, “오늘 썸남이 나를 만나자고 했어” “썸”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알아냈습니다.

“썸”은 영어 “Something”에서 유래된 말로, 연인 관계는 아니지만, 연인 관계로 발전 가능성이 있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를 뜻한다고 합니다. “정기고와 소유”가 부른 “썸”이란 노래를 불렀는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현대인들의 마음을 잘 아시고, 진리를 알기 쉽고 간단하게 요약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구약을 십계명으로 요약해 주셨고 십계명도 많아 보이셨는지 두 가지로 요약해 주셨습니다. (마22:37-40)“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주님은 두 가지도 많아 보이셨는지 하나로 요약해 주셨습니다. (마7:12)“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이것을 “황금률”이라 부릅니다.구약을 십계명으로 요약할 수 있고, 십계명을 요약하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요약되며, 다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요약하면, “먼저 섬겨라.”“먼저 주라”로 요약됩니다.

주님이 모든 계명을 지켰다고 말한 청년에게 (22절)“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주님은 청년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부족하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사랑은 주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소중한 것은 모든 것들을 자식에게 주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이 귀한 것은 죄인을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게 피 한 방울까지 남기지 않으시고, 죄인들을 위해 쏟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와 은사, 축복들이 그것이 무엇이든 베풀고 나눌 때, 모든 계명이 완성되며, 최고의 사랑이 완성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율법과 최고의 사랑을 실천 하는 것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할 수 있습니다.

3. 풍요했지만, 기쁨을 잃어 버렸습니다.(21절)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이 말씀은 주님은 청년에게 모든 재산을 처분하여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 팔아”란 “물건을 사고파는” 상업용어로, 이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태복음 13장 감추인 보화와 진주비유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마13:44-46)“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두 사람은 자신이 가진 모든 소유보다 보화와 진주가 더 가치 있다고 판단하고 자신의 모든 재산을 팔아 그 보화와 진주를 샀습니다. 그런데 부자 청년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보화보다 자신의 소유가 더 가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보화의 가치를 잘 몰랐기에 자신의 소유를 팔 생각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 결과 (22절)“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하며 근심하며 가니라

사람이 언제 고민에 빠집니까? 언제 답답합니까? 답이 두 개 일 때입니다. 이것을 선택할

것인가? 저것을 선택할 것인가? 이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할 것인가? 저 사람과 결혼해야 할 것인가? 계산이 잘 안될 때입니다.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지 잘 모를 때 근심하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부자 청년이 “근심”하게 된 이유입니다.

성도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많이 가졌음에도 기쁨이 없고, 평안이 없습니까?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하여 가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좋은 것을 누리고 사용하고 있지만, 원망과 불평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하여 그 가치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가 경제적으로 낙후된 방글라데시로 나타났습니다. 삼중고로 살았던 헬렌 켈러 여사의 일기에 이런 기도문이 있습니다. 하나님 눈을 크게 뜨고 보면서 불평을 하는 사람에게 단 하루만 보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하나님 말할 수 있음에도 원망하는 사람에게 단 하루만 말하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하나님 귀로 듣고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단 하루만 듣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감사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것들을 생각하면,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부자 청년은 남보다 많은 것을 받아 수고하였지만, 아주 소중한 영생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는 주님을 만났지만, 영생을 잃어버렸고, 계명을 지켰지만, 사랑은 잃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풍요했지만, 기쁨을 잃어 버렸습니다.

시편 기자는 “식물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가 기뻐하고 감사할 것이 한두 가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혜와 축복들을 헤아려 볼 때, 부족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것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므로, 진정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며 사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