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8일 주일설교 원고 / 죄가 세상에 들어온 세 가지 경로

성경 : 창세기 3 : 1 – 14

제목 : 죄가 세상에 들어온 세 가지 경로

  1. 6. 28

요즘 한국은 메르스(중동 호흡기 증후군) 때문에 난리인 것 같습니다.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도 “한국인=메르스”라는 공식이 생긴 것 같습니다. 한국 가족들도 “너희들은 괜찮니?”, “이번 여름에는 한국에 오지 마라?”는 전화를 받기도 합니다. 현재 메르스로 사망한 한국 사람은 31명 (대전12명),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은 181명, 그리고 2931명이 격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처음 메르스가 들어 온 경위는, 68세 된 한 사람이 4월18일 인천공항을 출발해서 바레인,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를 여행하고 다시 바레인에서 카타르를 경유해 5월 4일 인천공항으로 입국했습니다. 그가 도착한 지 일주일 뒤 5월 11일에 최초로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한 사람으로 시작한 메르스가 지금은 한국 전체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죄가 세상에 들어온 것에 대해 (롬5:12)“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 왔나니” “메르스 환자 한 사람이 수천 명을 감염시켰다.”라는 사실을 통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들어왔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어떻게 한 사람을 통해 죄가 세상에 들어 왔는지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선악과를 먹는 것을 통해 죄가 세상에 들어 왔습니다.

뱀이 화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1절)“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의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뱀이 “하나님이 먹지 말라 하시더냐.”고 하면 맞는데, “참으로, 모든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하시더냐?”“참으로”와 “모두”란 말을 첨가했습니다.

뱀은 화와가 듣는 것에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1절)“뱀은 들짐승들 중에서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두 말을 살짝 첨가함으로, 하와는 혼돈이 생겨 잘못된 대답을 합니다. (3절)“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화와는 처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다르게 대답합니다. (2:16-17)

하나님은 “먹지 말라”하셨지, “만지지도 말라”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셨지”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으면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내 방식대로, 내 편리한대로 더하고 빼기 시작하면 유혹에 걸려들게 됩니다.

여자는 화와를 닮아 비교적 남자보다 귀가 여린 편입니다. “여자는 예쁘다고 하면 거짓인줄 알면서 넘어갑니다.” “사랑한다고 하면 그 말을 믿고 자기하고 결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여러분! 결혼하고 싶은 남자는 쉽게 여자에게 “예쁘다. 사랑한다.”라는 말을 남발하지 않습니다.

누가 이런 말을 잘 사용합니까? 유혹하려는 사람들이 쉽게 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자 분들은 “사랑한다. 예쁘다. 공주 같다.”란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이 좋으며 “예쁘다.”란 말을 듣지 못한다고 해서 서운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말들을 기대할수록 유혹 받기 쉬울 뿐입니다.

또한 뱀은 화와가 먹는 것과 만지는 것에 약하다는 알고 있었습니다. (6절)“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여자에게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는 것보다 치명적인 것이 없습니다. 하와는“하나님께서 먹지 말라”한 것에 대해 고민하던 중 뱀이 “만지지도 말라 하더냐?”고 한 말에 만져 볼 마음이 생겼고, 결국 선악과를 따 먹고 말았습니다.

여자 분들은 백화점에서 물건을 살 때 그냥 눈으로 보고 사는 법이 없습니다. 먼저 손으로 만져 본 후에 삽니다. 박물관에서 그림을 감상할 때도 손으로 만져 보아야 직성이 풀립니다. 그러다보니 박물관에서 조차 “손대지 마세요!”란 글씨까지 써 붙여 놓고 있을 정도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흔들며, 침범해 오는 유혹이 있습니다. “먹는 것”입니다.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음식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요즘은 “돈을 먹었다. 뇌물을 먹었다.”라고 합니다. 성경에 가롯유다, 아나니아 삽비라, 아간과 게하시가 그러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걸려 넘어지는 것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물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힘씁시다.

  1. 욕심을 통해 죄가 세상에 들어 왔습니다.

(2:5절)“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하나님과 같이 되어”화와는 분수에 넘치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습니다. (민16:10)고라당이 “아론 자손같이 우리도 제사장 직분을 달라”요구하자 모세는 “너희가 너무 분수에 지나치느니라.”고 답했습니다. 사울 또한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제사를 드림으로 폐위되었습니다.

흔히 “분수를 알라.” “분수에 맞게 살라”는 말을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한계가 있습니다. 경제생활도 “자기 한계”를 넘으면 큰 낭패를 보게 됩니다. 분수는 넘어서는 안 될 경계선입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쉽게 범하기 쉬운 죄는 분수에 넘치는 행동입니다. 성경은 “자기 맡은 일에 충성하라”고 하였습니다. 남의 일을 간섭하는 것은 충성이 아닙니다. 분수를 모르거나, 분수에 넘어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욕심 때문입니다. (약1:15)“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하나님은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과일을 먹게 하셨습니다. (창2:16-17)“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그런데, 딱 하나, “이것만큼은 꼭 지켜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담과 화와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대해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이 금하신 것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자족하는 훈련입니다. 없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이미 가진 것에 대해 집중하는 훈련입니다. 성경은 남의 재산을 넘보고 욕심을 내는 것은 도둑이라고 하였습니다. 남의 아내를 넘보는 것을 간음이라 했습니다. 욕심은 수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한 가지가 없는 것 때문에 마음을 빼앗길 때 일어나게 됩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자족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빌4:11-12)“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사람이 욕심을 갖게 되는 이유는 모든 것을 절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이것 아니면 안 돼, 그것 없으면 절대로 살수 없어” 이것이 절대화라면, “그것 없어도 괜찮아”라는 태도가 상대화입니다.

(고전7:29-30)“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이 말은 결혼의 목적이 남편이나 아내에게 두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쉽게 표현하면 “배우자에게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당신은 이래야 한다.”,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 기준을 정해 놓고 미치지 못하면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이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만족도 상대화 하라는 것입니다. 슬픔도 기쁨도 한 순간이므로 너무 슬퍼하거나 아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세상의 소유와 내가 가진 것에 대해서 너무 욕심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쓰고 먹는 것이 한계가 있으며 소유했다 해서 다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욕심은 우리를 사망의 길로 유혹한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1. 책임전가를 통해 죄가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창세기 2장에서 아담은 화와에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창2:23)“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나의 전부, 나의 모든 것”이란 뜻입니다. 그런 두 관계가 깨졌습니다.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함으로 일어난 비극입니다.

먼저, 아담이 화와에게 책임을 전가 했습니다. (3: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아담이 하는 말을 잘 보십시오! 자기가 먹어 놓고 화와가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화와에게 책임을 전가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책임을 하나님에게 전가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리고 화와는 그 책임을 뱀에게 전가시킵니다.

두 사람은 모두 “제 탓입니다.” “제게 책임이 있습니다.” 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책임을 전가하고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했습니다. 모두 오리발을 내 밀고 있습니다. 오리발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여 놓고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했을 때, “제가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

죄는 전가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오늘 모든 인생도 아담과 화와 같이 답습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책임을 전가하고 변명하는데 천재들입니다. 사랑도, 믿음도, 소망도 책임을 회피할 때 깨어지고 맙니다. 부부도, 가족도, 형제도, 우정도 책임을 회피할 때 모두 산산 조각나고 맙니다.

그러나 첫 번째 아담은 죄를 지은 다음, 그 죄를 전가했습니다. 우리에게 죄를 전가하고 사망을 전가하고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담, 예수님은 죄를 알지도 못하시면서 오히려 우리의 죄를 담당 하셨습니다. (벧전2:24)“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 우리는 아담과 화와의 실수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책임을 회피하고, 남에게 전가할 것이 아니라 책임을 감당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어떤 일에 반응 한다는 뜻입니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잘못하였을 때 잘못을 시인하는 것을 말합니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자기 맡은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책임을 감당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맡은 자는 책임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도자는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합니다. 성숙해 간다는 것은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는 처음 비록 아담과 화와의 후손이지만,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지음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자로써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책임 있는 성도,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야 합니다.

모든 인류가 죄를 지어 사망에 이르게 된 동기는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먹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욕심을 극복하지 못한데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리고 책임을 전가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지음을 받은 성도로서 절제하며, 책임을 감당하는 성도로 살 수 있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