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4일 주일 설교 원고 / 히스기야, 보너스 15년 인생을 더 살다.

성경 : 열왕기하 20 : 1 – 7

제목 : 히스기야, 보너스 15년 인생을 더 살다.

                                                                                   2015. 6.14

유대 13대, 히스기야 왕은 중병으로 곧 세상을 떠나야 할 형편에 처했습니다. 그런 때에 히스기야는 결사적으로 하나님께 매달렸고, 결과적으로 15년의 생을 더 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졸라서 덤으로 받은 15년을 어떻게 살았는가? 궁금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나에게도 시간을 더 주시면, 그 시간들을 후회 없이 잘 사용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에게 생명을 연장해 주신, 15년 플러스 인생의 빛과 그림자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히스기야, 죽음 앞에 선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다.

본문 1절을 보면 정확한 병명은 모르지만, 심각한 죽을병에 걸려 죽게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로 하면 “암”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암” 이란 병명은 1801년 프랑스 비샤란 의사가 “사고를 당한 조직”이라고 불렀고, 이후에 “암”이란 병명이 붙여졌습니다.

이런 절망적인 죽음을 알려준 사람은 하나님의 선지자 이사야였습니다. 냉정하게도 이사야는 히스기야 왕에게 와서 “집을 정리하라. 당신이 죽고 살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집을 정리하라”는 말은 왕이 죽은 후에 후계자 문제와 같은 중대한 국사를 비롯해서 미결된 것들을 찾아서 매듭지으라는 뜻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의사 선생님이 히스기야의 병은 수술할 수 있는 초기 단계나, 수술하고자 열었으나 암이 전신에 퍼져 서둘러 닫아 버리고서 가족들에게 “환자가 먹고 싶은 것 맘껏 드시게 하고 맘을 편하게 해드리라.” 고 하는 상태쯤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중병에 걸린 시기를 (1절)“그 때”라고 말합니다. “그 때”란 앞장에서 앗수르 군데가 예루살렘을 포위한 때를 말합니다. (18:13)“히스기야 왕 제 십 사년에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점령하매”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 때 할 수 있는 말은 “기가 차다.”란 말 밖에 없었습니다.

전쟁 중에 왕이 절망적인 소식을 들었을 때 히스기야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내가 이렇게 젊은데 죽다니!” “내가 이제 겨우 왕권을 이어 받아 나라를 바로 세우려고 했는데 죽다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받아들여지지 않아 분노가 치솟았을 것입니다.

죽음의 심리학자로 알려진 “엘리자베스 쿠블러와스”가 쓴 “임종과 죽음”이란 책에서 죽음을 눈앞에 둔 600명을 대상으로 심리작용을 분석한 책입니다. 결론적으로 사람들은 대부분 다섯 단계를 거치면서 죽는다고 적고 있습니다.

처음은 죽음을 “부정하는 단계” “나는 아니다.”라는 단계를 가장 먼저 거치게 된다고 했습니다. 암 진단을 받으면 모두 “아니다, 무엇이 잘못됐다. 오진이다.” 라는 반응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죽음을 준비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둘째 “분노의 단계로”, “하필 왜 나인가?” 나보다 나이도 많고 병약한 사람도 많은데, 아직 나는 나이도 적은데 왜 내가 죽어야 하는가? 라는 반응입니다. 불공평하다는 것입니다.

셋째 “타협의 단계”로, “살길이 없을까 찾는 단계입니다.” 의사에게 한 달만이라도 더 살게 해 달라 애원한다든지, 유명하다는 의사를 찾아가거나, 유명한 기도원을 찾아갑니다. 넷째 “체념의 단계”로, “모든 것이 다 쓸데없구나!” 인생 최대의 허무와 공허감이 찾아오는 때라고 합니다.

이때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하는 시기로 복음을 잘 받을 수 있는 때라고 합니다. 다섯째, “수락의 단계”, 본인에게 의지가 없는 피동적인 상태가 되는 시기입니다.

성경은 죽음의 성격을 크게 5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누구나 홀로 죽습니다. 흔히 부부들이 한 날 한 시에 죽자 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같이 죽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혼자서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죽음은 무섭고 두렵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둘째, 대신 죽을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도 대신 죽을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큰 괴로움은 자식의 죽음을 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자식의 죽음마저도 그냥 목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 죽음의 시기를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오히려 축복 중 하나입니다. 언제 어느 때 누구에게 죽음이 다가올지 아무도 모릅니다. 넷째, 반드시 죽습니다. 죽음은 병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셨기 때문에 죽는 것입니다. (히9:27)“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후에 심판이 있으리라 다섯째, 주안에서 죽는 자가 복이 있다.(계14:13)

우리 역시 죽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죽음은 누구도 제외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서 “주안에서 죽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을 붙잡고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히스기야의 기도, 우리에게 기도의 응답을 보여주다.

죽음의 소식을 들은 후 히스기야의 반응과 행동을 볼 수 있습니다. (2-3절)“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 히스기야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듣고 너무나 슬펐고, 괴로워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위기 속에 기도하는 히스기야의 자세는 참으로 훌륭합니다.

“벽을 향했다.”는 말은 사람과의 관계는 완전히 단절해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향하여 기도했다는 뜻이지만, 벽을 향해 기도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두운 벽 뒤쪽에 성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약 백성들은 기도할 때 성전을 향해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다니엘이 포로 중에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솔로몬을 비롯 구약 성도들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왕상9:3)“내가 너의 건축한 이 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의 이름을 영영히 그곳에 두며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 이런 약속 때문에 솔로몬도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대하6:34-35)“그들이 주께서 택하신 이 성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 있는 쪽을 향하여 주께 기도하거든 주는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보시옵소서.

히스기야의 놀라운 지혜를 볼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승부를 걸어야 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마음과 눈이 성전에 있을 것을 알고 기도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디서든지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시간과 장소는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구약 성도들은 성전에서, 성전을 향하여, 성전을 생각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애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는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히스기야는 자신이 기도한대로 선하게 살았습니다. 그는 유대 13대 왕으로 다윗 이후 300년 만에 등장한 참으로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우상의 근거지인 산당들을 모두 부수었고, 제사장의 직책의 회복하였고, 폐쇄된 성전 문을 열고, 성전 복구 작업을 한 후, 예배를 회복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한 보상으로 생명을 연장시켜 달라고 요구한 것은 아니라 다만, 자신이 최선의 삶을 살아 온 것을 기억해 달라고 부르짖은 것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애쓰는 종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그 부르짖음을 외면치 말아달라고 눈물로 애원한 것입니다.

이사야는 히스기야 왕의 애절한 기도한 이사야 38장9-20절에 기록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함축적인 내용은 (사38:16)“주여 사람이 사는 것이 이에 있고 내 심령의 생명도 온전히 거기에 있사오니 원하건대 나를 치료하시며 나를 살려 주옵소서” 히스기야의 기도는 즉시 응답되었습니다. (5절)“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라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 주는 가르침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진실 되게 살라. 고난과 위기를 만날 때 하나님께 부르짖으라. 기도하라. 하나님은 눈물과 진심의 기도는 응답하신다.”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성전을 향하여 전심으로 기도하는 것을 귀중히 보시며,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고난당하여 흘리는 눈물의 기도를 응답하심을 믿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히스기야, 15년, 보너스 인생을 어떻게 살았나?

기적적으로 살아난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크게 나라가 번창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탁월한 경제정책으로 온갖 보화와 곡식들을 채울 창고가 부족할 만큼 풍성했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뜻하지 않은 큰 실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큰 실수는 바벨론과 손잡고, 앗수르를 물리치려고 했습니다. 바벨론 사신들이 왔을 때 히스기야는 왕궁의 보물과 무기고를 활짝 열어 모두 보여 주었습니다. 이 행동에 대해 (대하32:25) “마음이 교만하여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않았다.”고 말했고, (대하32:31)“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히스기야는 어려울 때는 하나님께 간구하였지만, 어려움이 지난 다음에는 자신이 그 어려움을 돌파한 것처럼 자랑하고 교만했으며, 바벨론과 손잡고 앗수르와 대항하고자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가 건강하여 회복되고, 나라가 강성하고, 성공하였을 때 하나님을 멀리 떠났습니다.

(약4:6)“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헬라어로 “교만”이란 “다른 사람 위에 자신을 올려놓는다.”는 뜻입니다. 다른 말이나 가르침을 무시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내가 당신보다 더 잘 아는데, 무슨 충고야!,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 교만입니다. 당신이 무엇을 알아서 그러나!, 남이 한 것을 존중하지 못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내 인생이 잘 나갈 때에, 건강하고 힘이 있고, 재물이 있고, 바라던 자리에 앉아 있을 때에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되는 반면 하나님의 음성은 들리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형통하고 잘 될 때, 우리 마음이 교만하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다시 말해, 내가 잘되고 형통할 때,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잘 섬기는가를 시험하시는 시기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다보면 우리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약5:13-16)“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질병과 고난에 대한 해답은 기도입니다.

히스기야가 덤으로 받은 15년, 인생은 우리 모두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지금껏 생명을 연장 시켜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하심, 받은 사랑과 빚진 삶을 어떻게 보답하며 살아야 하는가? 기억하며 사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