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레위기 19 : 1 – 8
제목 : 우리는 어떻게 거룩하게 살 수 있는가?
- 5. 31
기 독교인들에게 “거룩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고 대답한 사람이 가장 많았으며, “도덕적으로 깨끗한 것”이라고 답한 사람이 그 다음으로 많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룩을 너무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회당이 거룩하다거나, 설교하는 강단이 거룩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옛날에는 강단에 신을 신고 올라오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신을 벗고 올라 왔습니다.
레위기를 비롯 성경전체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하고 성결한 삶을 살”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거룩”이란 말이 레위기에만 50여 차례나 기록되어 있으며, 성경 전체에서는 무려 850여 차례나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의 표식으로 할례를 행하도록 하였습니다. 남자는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행하도록 하였습니다. 할례란 남자의 생식기를 잘라 내는 것을 말합니다. (창17:11)“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거룩”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거룩”은 “자른다.”란 뜻으로 “하나님께서 구별 하신 것”을 뜻합니다.
“링 그렌”이란 사람은 “어떤 물건이나 사람이나 그 자체로서 거룩한 것이 아니라, 다만 그것이 하나님과 관계될 때만 거룩하게 된다.”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거룩하게 살 수 있을 것인가?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여러 사람들 가운데서 부모를 구별하라.
(2-3절)“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 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거룩”이란 도덕적으로 깨끗하다는 뜻을 담고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거룩은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십 계명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1계명부터 4계명까지는 하나님께 대한 계명으로 되어 있고, 5계명부터 10계명 까지는 사람에 대한 계명입니다. 사람에 대한 계명 가운데 첫 번째 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5계명입니다. 다른 계명과 달리, 부모 공경이 다른 점은 거룩과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 람이 혼자 있을 때 나쁜 사람인지, 좋은 사람인지 잘 모르지만, 대인관계 속에서 그 사람의 본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부모와의 관계가 온전하고 바를 때 성경은 “거룩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거룩한 삶”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 도여러분! 부모가 누굽니까? 자녀를 낳아 길러주고, 공부시켜주고,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시고 자녀를 가장 사랑하는 분이 부모입니다. 그런 부모를 자녀가 공경했다고 해서 칭찬받거나 더욱이 상 받을 일이 아닙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엡 6:1-2)“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한 것입니다.
그 런데 놀라운 것은 성경은 너무나 당연한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공경할 때, 그것이 곧 “거룩한 일을 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부모를 내가 공경했는데, 내가 할 일을 했을 뿐인데, 하나님께서 “거룩한 일을 했다.” 말씀하십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여러 사람들 가운데서 부모를 구별”하셨기 때문입니다.
너무 쉬운 일이고 당연한일이지만, 하나님께서 구별한 그 일을 행한 자들에게 “거룩한 일을 행하였다.”라고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엡 6:2-3)“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십계명 중에 약속이 붙여 있는 계명은 5계명 하나뿐입니다. 어떤 약속입니까?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는 약속입니다.
우 리는 성경을 믿는 자들입니다. 오늘 성경은 “형통과 장수의 비결이 부모공경에서 온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흔히, 자녀들이 “엄마 아빠가 내게 해 준 것이 무엇이 있느냐?” 이런 말을 합니다. 성경은 부모가 나에게 많이 해 주었기 때문에 공경하고, 혹 부모 역할을 하지 못하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부 모는 자식이 판단해서 “효도를 할 것인가 않을 것인가?” 선택의 요소가 아니라 의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 모든 사람가운데서 특별하게 구별하신 부모를 공경하여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여러 날들 가운데서 예배하는 날을 구별하라.
(2절)“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창2: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출20:8)“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안식일과 평일은 똑 같은 날입니다. 그런데 일곱째, 안식일이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구별하여 떼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6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광야 백성들에게 매일 한 오멜(2L)의 만나를 거두어 양식을 삼도록 하셨습니다. 평일에 거둔 만나는 아침이 되면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나서 먹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6일째 거둔 만나는 하루가 지나도 상하거나 냄새가 나지 않아 안식일에 먹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백성들은 평일에는 만나를 얻을 수 있었지만, 안식일에는 만나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만나”를 통해서 안식일과 평일을 구별하여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이렇게까지 구별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출16:29)“여호와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줌으로 여섯째 날에는 이틀 양식을 너희에게 주는 것이니 너희는 각기 처소에 있고 일곱째 날에는 아무도 그의 처소에서 나오지 말지니라.”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세상의 노동으로부터 안식하도록 하여 자기 백성들을 지키기 위함이며, 일곱째 날에는 일하지 않아도 먹을 것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사 람이 “안식하지 않고 일하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이며,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무시하는 일이 됩니다. 하나님은 6일 동안만 일을 해도 충분히 살 수 있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오늘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직장인들이 주일날 하루 쉬었다고 해서 월급에서 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루를 쉬어도 보상해 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현대인들의 질병은 창조의 질서에서 벗어나 과로, 피로, 스트레스, 등 쉬지 못한데서 온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구별한 날을 기억하고 잘 지키는 것이 “거룩한 삶”입니다.
그 러면, 신약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도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가? 안식일과 주일은 어떻게 다른가? 구약의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6일 동안 만물을 창조하신 이후 하루를 안식하도록 주신 명령이라면 신약의 주일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안식 후 첫날 부활)을 기념하여 예배를 드린 것에서 시작 되었습니다. 주일 또한 평일과 다르지 않지만, 예수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죽으시고, 다시 3일 만에 부활하신 사실을 기억하고 예배를 드린다는 점에서 구별된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구별한 날을 지킬 때, 하나님은 “거룩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날을 지키고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여러 물질 가운데서 하나님께 드리는 물질을 구별하라.
지금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 몸과 시간 재능 물질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구별한 것 중 성소와 성전이 있습니다. 성소 성전이라 해서 재로가 다르지 않습니다. 성소 안에 있는 물건들을 거룩하다고 하셨고, 성전 또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대하7:16)“내가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 하나님께서 구별하셨기에 거룩한 물건과 장소가 된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 몸이 성전이라고 했습니다.(고전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엡1:4-5)“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우리가 거룩하게 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구별하여 주셨기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께서 구별한 자가 되었기에 거룩한 자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제물, 성물이 있습니다. 많은 물질 가운데 거룩한 제물이 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린 것을 “거룩하다”라고 하셨습니다. (5절)“너희는 화목 제물을 여호와께 드릴 때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리고”(레27:28)“어떤 사람이 자기 소유 중에서 오직 여호와께 온전히 바친 모든 것은 사람이든지 가축이든지…바친 것은 다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함이며” 거룩이란 “하나님께 바쳐진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헌신, 헌물, 헌금이 소중한 것입니다.
성경이 아나니아 삽비라의 사건을 크게 다루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나니아 삽비라가 사도들을 속이고 거짓말을 하고, 얼마의 돈을 숨긴 것 때문만이 아니라, 하나님께 구별한 것을 숨겼기 때문입니다. (행5:4)“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일 전에 불교에 법정 스님이 세상을 떠난 후 “무소유의 삶”이 사회에 큰 감동을 주었고,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고 칭찬했지만, 무소유로 살겠다고 하거나 노력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무소유로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무소유”를 가르친 곳은 없습니다. “무소유”개념은 기독교의 개념이 아닙니다.
성경은 재물을 소유한 것을 죄악시하거나 금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재물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주신 것임을 말씀합니다. (전5:19)“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모든 사람에게 선물로 주신 재물에 대해 무관심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가 가진 돈의 가치는 동일합니다. 바울이 빌립보교회로부터 선교헌금을 받은 후 (빌4:18)“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하였습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가 가진 돈의 가치가 동일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드려질 때, 그것은 거룩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시기 우리에게도 거룩한 삶을 요구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거룩하게 살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부모를 구별되게 섬기고, 공경하는 것이 거룩한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날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거룩한 생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린 몸과 마음, 물질이 “거룩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레20:8)“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니라.”
하나님의 것을 구별함으로, 거룩하게 사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