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7일 주일 설교 원고 / 하나님이 각자에게 보여주신 거울

성경 : 고린도전서 10 : 1 – 11

제목 : 하나님이 각자에게 보여주신 거울

                                                                        2015. 5. 17

심리학에서 “나르시시즘” 이란 말이 있는데, 번역하면 “지나친 자기도취”란 말로, 자신의 외모와 능력은 물론, 항상 남보다 뛰어나나고 믿고, 자기중심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뜻합니다. 자신이 스스로 완벽한 사람으로 여기며 환상 속에서 만족을 얻는 심리상태를 말합니다.

“나르시시즘”은 “거울아 거울아”란 노래에서 찾을 수 있는데,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 누가 제일 예쁘니?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 내가 제일 예쁘니?” 요즘, 공주병, 왕자 병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구약 역사를 회고하면서 거울이라는 말을 두 번이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6절에는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11절에는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라고 하였는데, 개역 성경에는, “우리의 거울이 되어”,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어떤 거울을 볼 것을 요청하고 있는지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역사에 일어난 사건들이 우리의 거울이다.

운전하면서 부지런히 보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양쪽 “사이드 미러”와 “백미러”입니다. 운전을 할 때 “사이드 미러”와 “백미러”를 통해 좌우와 뒤를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지난 일과 과거의 일은 쉽게 잊어버리거나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성경은 지난 역사의 교훈을 잊지 말고, 기억할 것을 수백 번 넘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행한 일이 우리에게 거울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6절)“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거울)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7절부터 10절까지 4가지 일을 상기시키면서 거울로 삼을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첫째, (7절)“저희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숭배 하는 자가 되지 말라” 둘째, (8절)“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셋째, (9절)“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넷째, (9절)“저희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자” 저들은 음행하다 하루에 2만 3천명이 죽었으며, 하나님을 시험하다 뱀에게 물려 죽었으며, 원망하다가 멸망하였기에 우리는 이런 일을 행하지 말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11-12절)“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이러한 역사의 교훈을 거울로 삼아서 우리도 선줄로 생각하지 말고 늘 넘어질까 조심하여야 합니다.

“타산지석”이란 말이 있습니다. 타인에게 당한 일이 나에게 교훈이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 나를 보게 하십니다.

믿음의 사람,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였지만 양심에 가책이나 자신이 사기꾼이라는 사실

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야곱은 외삼촌에게 사기를 당한 후에 비로소 자신이 사기꾼이라는 것을 실감하였습니다. 그가 외삼촌에게 레아를 라헬이라고 사기 당한 후, 비로소 과거에 자신이 에서라고 아버지를 속이고 축복을 빼앗았던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도행전 9장 욥바에 사는 여 제자 “도르가”는 평소 구제와 봉사를 많이 했습니다. 그가 죽은 후 그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 찾아와 자신의 속옷과 겉옷을 내보이며 슬퍼했습니다. 그가 죽은 후에 비로소 사람들을 통해 도르가의 선행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구약 삼손을 보면서 “나도 유혹에 빠질 수 있구나!”, “유혹을 받아 잘못하면 아주 처량한 신세가 될 수 있구나!”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나 가룟 유다를 보면서 “나도 돈 때문에 거짓말을 하거나 믿음에 떨어질 수 있구나!”생각하며 자신을 살피며 조심을 하여야 합니다.

신앙이란 다른 사람을 통해 자기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나는 가까이 가는데, 사람들이 피합니다.

“나에게 가시가 있구나!” 상대가 나의 말을 무시합니다. 불친절합니다. “내가 고쳐야 할 부분이 있구나!” 알아 차려야 합니다. 주변 사람들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니다. 주변과 이웃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비친 나의 모습을 바로 보고 고쳐야 합니다.

2. 자녀가 나의 거울이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은 나의 자녀입니다. 지금 5살 된 내 아이의 모습은 내가 5살 때 모습이며, 지금 내 아이의 사춘기 모습은 나의 사춘기 때 모습이라고 생각해도 많이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심리학적으로 부모가 자녀를 때리거나 학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녀를 통해 자신의 나쁜 과거를 보기 때문이라는 주장은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아이가 나쁜 일을 했을 때 아이를 통해 지난 날 자신이 나쁜 짓을 한 것을 보는 것 같아 아이의 작은 실수에도 쉽게 흥분하며, 야단을 친다는 것입니다.

성경도 이런 부모의 잘못된 태도를 부인하지 않고 있습니다. 레아는 아들과 딸 모두 7명의 자녀를 낳았습니다. 레아는 자녀를 낳을 때마다 “하나님의 이름”을 새겨 넣었습니다. 첫아들을 낳아 “르우벤”이라 했는데, 그 뜻은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권고하셨다” 둘째를 낳아 “시므온”, “여호와께서 나에게 총이 없음을 들으시고 아들을 주셨다.”

셋째 “레위” “지금부터 내 남편이 나와 연합하리로다.” 넷째 “유다”“내가 이제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다섯째 “잇사갈”“하나님이 그 값을 주셨다.” 여섯째 “스불론”“이제는 그가 나와 함께 거히리로다.” 레아의 고백을 통해 자녀가 곧 부모의 거울인 것을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면, 라헬은 아들을 낳아 “요셉”이라 지었는데, 이는 “하나님이 나의 부끄러움을 씻으셨다.”라고 했는데, 라헬은 오래도록 아들을 낳지 못하자 수치스러워 견딜 수 없어하다가 아들을 낳자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폭발한 것입니다.

모세는 아들을 낳아 “게르솜”이라 지었습니다. (출2:22)“그가 아들을 낳으매 그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여 가로되 내가 타국에서 객이 되었음이라” 사람은 자식에게 좋은 이름을 지어 부르는 것이 보통인데, 모세는 아들을 낳아 “게르솜이란, 내가 타국에서 객이 되었다.”라고 불렀습니다. 한탄 서러운 자신의 처지를 자녀에게 반영시킴으로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잠17:6)“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식의 영화니라”(잠14:18)“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음으로 기업을 삼아도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면류관을 삼느니라.” “부전자전”, 아들은 아버지를 닮고, “모전여전” 딸은 어머니를 닮는다는 말과 같이 내가 낳아 기른 자녀를 보면 나의 적나라한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내 자녀보다 나를 더 잘 보여주는 것은 없습니다.

원숭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거울이라고 합니다. 동물원에 있는 원숭이에게 먹을 것을 주려고 하면, 주기도 전에 빼앗아 입에 넣지만, 거울을 주면,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보기 싫어 깨버린다고 합니다. 부모도 원숭이처럼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자녀의 행동이 보기 싫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요즘 부모들이 자녀들을 흔히 “원수”라고 말합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내가 과거에 우리 부모에게 원수노릇을 했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거울 속에 있는 모습은 고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거울을 보고 있는 자신이 먼저 고치면 저절로 고쳐 치게 됩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거울이다.

얼마 전 어떤 집사님이 “목사님 교회당 공사는 모두 참잘 된 것 같은데…”라고 말을 흐리다가 “교회당 아래층 형광등 불이 너무 밝아 얼굴에 작은 죽은 깨까지 너무 잘 보여요!”라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추녀는 거울의 정직함을 싫어한다.”는 말과 같이 사람들은 성경의 정직함을 크게 두려워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얼마나 누추하며, 악한 죄인인가를 폭로합니다.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것까지, 소상하게 고발하며 치욕을 드러내 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고발을 겸손히 받아 드려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성경은 우리의 현재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확대경과 같습니다.

세상 이론들과 가치관들은 우리를 속이고 있습니다. TV, 인터넷을 보십시오! 우리의 눈을 속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세상이 현상적으로 보이는 것이 무엇이며, 인간이 붙잡아야 할 본질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현재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먼 미래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과거를 보여주는 백미러와 같습니다. 성경은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말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지난 날 세상을 헛된 삶을 버리고 새 사람으로 살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삶의 균형을 잡아주는 쌍안경과 같습니다. 두 눈으로 사물을 보아야 균형을 잃지 않듯이 우리는 현실과 미래를 잃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성경보다 우리를 균형 있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나의 믿음이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확인하려면 야고보서를 보십시오! 내가 서 있는 위치를 알려면 시편을 펴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현재 형편을 알려면 베드로전서를 읽으면 알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잘 모를 때 잠언과 전도서를 읽게 되면 균형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에 거울을 바로 보고 사용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세 시대 회막에서 봉사하던 여인들이었습니다. 성막에서 봉사하는 여인들은 청동거울을 보며 몸을 단정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성막기구를 만들 때 여인들은 그토록 소중하게 사용하던 놋 거울을 성소의 기구인 물두멍 즉 세수 통을 만드는데 드렸습니다.

(출38:8)“그가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하였으니 곧 회막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더라. 여인들은 거울로 몸을 단장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기꺼이 바쳤던 것입니다. 참으로 거울을 바로 보고 사용하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3가지 거울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역사에 일어난 사건이 우리의 거울이며, 자녀가 나의 거울이며,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거울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잘 볼 수 없습니다. 거울을 보아야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거울을 통해 날마다 우리 자신을 점검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끝]